국경 끝 산골까지 넘어가 별을 본다. 수 광년 떨어진 곳에서 내려오는 빛을 렌즈에 받는다. 천체관측동아리 KUAAA. 손가락 한두 마디와 발끝에 체중을 싣는다. 벽을 타고 서서히 위로 옆으로 몸을 옮긴다. 실내 클라이밍동아리 올클이다. 흑인음악동아리 TERRA는 직접 힙합 리듬을 짜고 거기에 노래를 입힌다. 무대에서 노는 데 선수들이다.

동아리는 대학 생활에 상쾌한 호흡을 불어 넣는다. 청춘의 절반은 동아리에 있다. 이런 비유를 현실로 만들어 줄 동아리 세 곳을 선정해 취재했다. 흔쾌히 취재 요청에 응해준 세 동아리 KUAAA, 올클, TERRA에 감사하다.

 

가운데 보이는 희뿌연 연보라 나선은 삼각형자리 은하다. 지구에서 약 300만 광년 거리다.
가운데 보이는 희뿌연 연보라 나선은 삼각형자리 은하다. 지구에서 약 300만 광년 거리다.

 매월 음력 마지막 날, 밤은 유독 어두워진다. 태양과 달이 동시에 뜨고 지는 탓에 밤하늘에 달이 걸리지 않아서다. 그믐이 오는 것이다. “달빛이 세면 별이 잘 안 보이거든요.” 한민구(공과대 기계18) 씨가 묵직한 장비들을 차에 실으며 말했다. 그가 속한 본교 천체관측동아리 ‘KUAAA(회장=이규호, 쿠아)’는 그믐을 맞아 38선 바로 아래, 경기도 연천으로 향했다. “좀 멀긴 해도 어쩔 수 없어요.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광해(光害)가 적어져서 관측이 잘 되거든요.” 도시의 불빛보다 별빛을 더 사랑하는 그들과 함께 가을 밤하늘을 카메라에 담았다.

어스름 질 무렵 KUAAA 부원이 천체관측을 위해 망원경을 조절하고 있다.
어스름 질 무렵 KUAAA 부원이 천체관측을 위해 망원경을 조절하고 있다.

별이 있다면 전국 어디든지

 1026일 오후 2, 정기 관측회를 떠나는 쿠아 사람들로 애기능 학생회관이 분주하다. 매월 그믐과 가장 가까운 주말이면 이들은 철원, 연천, 공주 등 전국 곳곳으로 별을 보러 간다. “다 왔나요? 밤에는 춥다고 하니까 얇게 입으신 분들은 동아리방에서 여벌 옷 챙기세요!” 이번 학기 동아리장을 맡은 이규호(이과대 물리18) 씨가 출발 전 복장을 점검한다. 처음 참가하는 신입부원도 있어 더 꼼꼼히 살피는 눈치다. “새벽까지 관측하다 보면 기온이 예상 밖으로 떨어져요. 조금 과하다 싶을 만큼 껴입는 게 좋아요.” 모든 활동이 야외에서 이뤄지다 보니 날씨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추위도 추위지만 운이 나쁘면 별은커녕 구름만 보다 오는 일도 있다. “정기 관측회를 15번쯤 갔는데 10번 정도 성공했어요. 저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죠.” 윤영우(이과대 지구환경16) 씨가 말했다. “그래서 날씨 좋은 날에는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번개로 비정기 관측을 자주 가요.” 그는 번개관측회에 얽힌 이야기도 하나 꺼냈다. “한 번은 친구랑 둘이 철원 백마고지에서 관측하고 있는데 순찰 중이던 군인이 저희를 발견한 거예요. 많이 당황했는데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이해해주더라고요. 레토나라고 하나요? 군용 차량 안에서 잠깐 몸도 녹이면서 같이 별 봤던 기억이 나네요.”

 고대산 초입에 자리 잡은 숙소에 도착하니 해가 기울고 있다. 다들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윤영우 씨 혼자 노트북을 골똘히 들여다본다. “오늘 제가 세미나 발표자거든요.” 쿠아는 정기 관측회 마다 간단한 천문학 강연 시간을 가진다. 이날 주제는 기초천문학으로, 천체 사진을 찍는 방법 전반이 다뤄졌다. 일반 사진 찍듯이 찰칵하고 별을 찍으면 잘 안 보입니다. 일정 시간 렌즈를 노출 시켜 빛을 모아야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그렇다고 마냥 오랫동안 렌즈를 노출 시킨다고 되는 건 아니다. 지구가 자전해서 별의 위치가 자꾸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도의식 가대를 사용합니다. 가대가 별을 따라 회전해 지구 자전을 상쇄하는 거예요.” 생소한 용어에 신입부원들의 고개가 갸우뚱하는 사이 어느덧 해는 완전히 저물어간다.

 

별똥별 떨어지는 소리는 !”

 해가 떨어진 산은 놀랄 만큼 춥다. 저마다 내쉬는 입김이 한겨울인 양 뿌옇다. “장비 다 챙겼죠? 출발할게요!” 겹겹이 껴입은 사람들이 숙소 불빛을 등진 채 걷기 시작한다. 인가에서 멀어질수록 어둠은 점점 깊어진다. 15분을 그렇게 걸어 옆 사람 얼굴이 보이지 않을 때쯤, 목적지인 신탄교에 도착한다.

 “북극성을 잡고 있어요.” 오도형(문과대 사학16) 씨가 렌즈를 들여다본다. “가대가 지구 자전을 제대로 상쇄하려면 북극성이랑 밝은 별 몇 개의 위치를 입력해야 해요. 그러면 가대가 별들의 각거리를 계산해서 적절한 속도로 도는 거죠.” 조금 신난 듯한 목소리다. 오도형 씨는 별을 배우다 보니 어느새 별이 취미가 됐다고 한다. “세계 어디를 가도 별은 보이잖아요. 그런 별들 이름을 하나씩 알아가는 거, 멋있지 않아요?” 다시 렌즈로 눈을 돌린 그의 카메라가 오리온자리를 겨눴다.

 “저기 밝은 별 두 개가 견우, 직녀성. 저기 숫자 3 모양이 카시오페이아자리예요. 보이나요?” 이규호 씨가 밤하늘을 칠판 삼아 별자리 수업을 진행 중이다. 손에는 분필 대신 레이저포인터가 들렸다. “저쪽에 다른 별자리들도 있는데 구름에 가렸네요. 그래도 걷힐지 모르니까 더 기다려 봐요.” 산등성이에 낀 구름이 느긋하게 산을 넘고 있다. 꾸물대는 구름 사이로 별들이 모습을 잠깐 드러냈다가 이내 사라진다. 이규호 씨가 레이저포인터로 애꿎은 구름을 쐈다. “, 카시오페이아자리는 북극성 찾을 때도 활용하니까 오늘 꼭 알아가세요!”

 밤이 깊을수록 무거워지던 고요가 !” 하는 감탄사에 깨진다. 별똥별 때문이다. “방금 봤어요? 진짜 선명했는데!” 서정우(생명대 생명공학19) 씨가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별똥별이지만 이곳에서는 그리 드물지 않다. “너무 빨라서 소원 빌 생각도 못 했어요. 다음번에는 제대로 빌어볼 거예요.” 그의 눈길이 다시 밤하늘을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 하는 소리가 별빛 아래에 퍼져나갔다.

 

오리온자리 근처 별들을 포착한 점상사진. 별들이 알알이 박혀 있다.
오리온자리 근처 별들을 포착한 점상사진. 별들이 알알이 박혀 있다.

멋진 사람들과 멋진 기억을

 “지금 일주사진(별의 이동 경로를 한 장의 사진에 담은 것) 찍으러 노동당사 갈 건데 같이 가실 분 있어요?” 조재건(정보대 컴퓨터18) 씨가 카메라를 챙기며 말했다. 철원에 있는 노동당사는 철원이 북한 땅이던 1946년에 지어진 옛 조선노동당의 건물이다.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며 파괴된 탓에 지금은 건물 외벽만 남았지만, 별깨나 찍는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잘 알려진 명소다.

 텅 빈 새벽 도로를 달려 도착한 노동당사는 신탄교보다 어둡다. 빛이라고는 멀리 보이는 군부대 초소 불빛뿐이다. “! 하늘 봐!” 주변이 어두운 덕에 하늘은 더 선명하게 반짝인다. 구름도 깨끗하게 물러갔다. “저기 흐릿한 거 보여요? 저게 은하수예요.” 윤영우 씨가 하늘 한구석을 가리킨다. 손가락 끝을 따라가니 옅은 얼룩이 하늘에 퍼져 있다. “오늘 운이 좋네요. 이렇게 별이 많은 건 오랜만이에요.” 별들이 빼곡하게 박힌 하늘에 모두의 시선이 멈췄다. 아무도 소리 내지 않는다. 저마다의 기억에 같은 풍경이 새겨졌다.

 이규호 동아리장은 쿠아가 편안한 공간이기를 바란다. “처음엔 별이 좋아서 들어왔는데 나중에는 사람이 좋아지더라고요. 공강 시간이면 편하게 동아리방에 모여 놀 수 있는, 그런 동아리로 남았으면 해요.”

 별이 맺어주는 반가운 인연. 쿠아와 같이 별 보러 가지 않을래?’

 

이동인 기자 whatever@

사진제공KUA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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