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쌀쌀한 바람과 함께 힘든 과제 기간이 다가온다. 이 시간이 지나가면 조용한 곳에서 꼭 혼술을 하리라 다짐한다. 그렇다고 순댓국집에서 혼자 술을 먹기엔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혼술에 맞는 분위기를 잡고 싶어 안암병원 언덕을 넘어가 성북구청 방향으로 가다 보면, 2인 이하만 입장할 수 있는 혼술주점 혜화동이 보인다.

  반지하에 위치한 가게 문을 열면 팝송을 틀고 있는 정준용(·46) 사장과 함께 사람을 좋아하는 개 심쿵이가 두 발을 들며 맞이해준다. 혼자 매일 술을 마신다는 정 사장은 밖에서 혼술을 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어 스스로 가게를 차렸다. “혜화에서 연극배우를 하면서 매일 술을 마셨어요. 가끔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혼술을 하고 싶은데 마땅한 곳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세 명 이상은 받지 않는 공간을 스스로 만든 거예요.”

  일본풍의 제등이 걸려있고 사케를 판매하고 있어 일식집을 연상시키지만, 메뉴판을 보면 일반 술집처럼 안주들이 다양하다. “가게 외관은 선술집처럼 보이는데, 한식과 중식이 메뉴의 대부분인 술집이에요. 사케는 제가 좋아해서 파는 거고요.”

  혼술주점답게 홀로 어묵탕이나 깐풍기를 시켜놓고 술을 마시려는 손님들이 가게에 들어선다.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거나 사색을 하는 등 혼술의 방식은 다채롭게 나타난다. 정준용 사장은 이들에게 말동무가 되어주고 이따금 가벼운 안주를 서비스로 주기도 한다. “여기를 가장 재밌게 즐기는 방법은 정말로 혼자 오는 거예요. 홀로 책이나 영화를 보다가 옆 사람이랑 같이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옆 사람과 친해져서 같이 2차를 가기도 하는 재밌는 풍경을 볼 수 있어요.”

취객은 들어오지 못하며, 목소리는 작게 내야 하는 이곳에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 술을 마시는 속도부터 분위기까지 술자리를 오롯한 내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 이곳에서 가을밤을 마무리해보는 건 어떨까.

 

김태형 기자 f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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