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게임과 e스포츠계가 홍콩 민주화 시위 상황과 엮이는 일이 발생했다. 블리자드의 인기 게임 하스스톤의 아시아태평양 e스포츠 경기에서 홍콩 출신 선수 blitzchung이 홍콩 민주화 시위 지지 발언을 했고, 블리자드는 선수에게 자격정지, 상금박탈과 같은 강한 징계와 함께 중국 전체에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슈는 간단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미국계 게임회사가 중국에 굽신거리는 모습은 미·중분쟁이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미 정부의 역린을 건드린 듯 했다. 의회로부터 압력이 내려왔고, 곧이어 블리자드가 그동안 여러 게임에서 이야기해왔던 자유를 향한 의지와 저항이 중국이라는 시장 앞에서 꼬리를 내렸다는 비판과 조롱이 인터넷 전반을 뒤흔들었다. 여파는 블리자드의 최대 축제인 블리즈컨행사장까지 이어져, 많은 게이머들이 홍콩 민주화시위를 지지하는 피켓을 들거나 블리자드를 풍자하는 코스프레를 하고 참가하는 풍경이 이어지기도 했다.

  블리자드라는 게임회사는 상당수의 게임들을 대중화의 단계까지 올려놓은 꽤 인기 좋은 회사다.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등 전세계적 흥행을 일궈낸 블리자드의 게임들은 뛰어난 재미도 재미였지만, 나름의 가치 표명도 적지 않다는 의미도 있었다. ‘스타크래프트는 차별과 배제를 넘어서는 통합을 게임 스토리의 주제로 내세웠고, ‘오버워치는 다인종 다성별의 세계에서 소수자의 의미를 잊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캐릭터와 세계관 속에 담아 왔다.

  그런 과거가 있기에 블리자드의 이번 행동은 더욱 거세게 비판받는다. 홍콩 민주화시위는 말 그대로 자유를 향한 저항인데 정작 블리자드는 스포츠 행위에서 정치적 발언은 금지된다는 명목으로 중징계를 내렸다는 의미에서다. 특히 선수징계 직후 이어진 대중국 사과문에서 사람들은 블리자드가 스포츠맨십을 위해서가 아니라 중국시장이라는 거대한 수요의 눈치를 봤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말은 맞는 말이지만 동시에 놓치고 있는 함의를 포함한다. 그 이전에 자유와 인권을 내세웠던 블리자드의 모습은 그럼 시장을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인가? 어떤 면에서 블리자드의 행보는 변함없이 일관적인데, 늘 시장이 원하는 바를 향했다는 점에서다. 정치적 올바름의 메시지는 그 가치에 대한 개별판단 여부를 떠나 시장에서 먹히는 메시징이었음을 생각해야 한다. ‘오버워치의 소수자 캐릭터 등장이나 홍콩 blitzchung 선수 징계 건은 결국 기업이 최대 시장이 원하는 바를 향한다는 단순한 자본논리에서라면 크게 어긋나는 일이 아니다. 늘 기업은 시장이 원하는 바에 맞춰 움직일 뿐 윤리나 정치적 당위가 그 위에 서지 않는다.

  블리자드가 홍콩 시위에 보여준 입장에 대해 비판하고 문제 삼는 것은 그래서 단순히 특정 입장에 대한 지지와 거부를 넘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회적 메시징이 갖는 한계 그 자체를 향해야 한다. 나이키가 갑자기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나이키가 결코 페미니즘 기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메시징 또한 시장 확대를 위할 뿐, 상황이 바뀌면 기업의 입장은 다시금 이런 가치들을 무시하게 되는 것이 기업의 논리다.

  특정 기업이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고 확산시키는 것을 무작정 부정적으로 보아야 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상황을 결코 해당 기업이 특정 가치를 지지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업의 윤리관에 대한 지나친 과대평가가 될 확률이 높고, 시민들은 그래서 기업의 메시징을 늘 경계하며 받아들여야 한다. 블리자드가 인종과 성별의 소수자 문제를 언급한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블빠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이번 홍콩 사태처럼 기업의 입장은 언제라도 뒤집히기 때문이다.

 

이경혁 게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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