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2 12:02 (목)
[석탑춘추] 갈바람 속 은행냄새
[석탑춘추] 갈바람 속 은행냄새
  • 김태훈 취재부장
  • 승인 2019.11.17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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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한 애벌레들이 캠퍼스를 꾸물꾸물 지나다닌다. 다른 곤충류와 다르게 이들은 겨울이 깊을수록 개체 수가 급증한다. 외피는 주로 검은색이나 흰색으로, 목 아래부터 정강이 위까지 덮는다. 재질은 나일론, 폴리에스터, , 동물 털 등이다. 보온에 특화돼 있다. 이 애벌레들은 냄새가 안 나리라는 자신감에 몰래 방귀를 뀌기도 한다. 그런데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외피 안에서 냄새가 퍼져 괴로워한다고 전해진다. 외피를 펄럭이는 애벌레가 있다면 의심해보자.

○…한 애벌레의 소식이다. 그는 보증금과 월세를 내고 방을 빌려 산다. 생활지 인근 집값이 비싸 꽤 값을 치르고도 좋은 집을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겨울이면 외풍 때문에 고생한다. 창문은 어떻게 뽁뽁이라도 붙이면 되는데, 벽에서 내뿜는 한기는 도무지 수가 없다. 나무가 볏짚을 두르면 거기로 이사 갈 계획이라 한다.

○…저번 주 내린 비가 가을을 쓸고 갔지만, 단풍은 여전하다. 은행도 싱싱하다. 캠퍼스 이곳저곳 떨어진 은행이 발에 밟힌다. 구수한 구린내가 코를 찌른다. 혹시 부끄러운 실례를 한 것으로 오해받을까, 애벌레들이 신발을 시멘트 바닥에 박박 긁는다. 은행나뭇잎으로 신발을 닦기도 한다. 별 소용은 없다. 단풍놀이 가기도 전에 갈바람이 그쳤는데, 무심하게 나까지 잊으려 해? 쌤통이다. 손에도 냄새 배라! 은행은 닦여도 냄새는 남는다. 가을 끝자락을 잡는다.

| 김태훈 취재부장 foxtr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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