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근 정부가 향후 WTO협상에서 더이상 개도국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앞으로 WTO협상에서 선진국으로 시장을 개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개도국특혜를 중단하기로 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국제사회에서 높아진 한국의 위상이다. 2018년 기준 한국의 GDP 규모는 세계 12위이다. 수출은 세계 6,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달러를 넘어섰다. 선진국클럽이라 불리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이면서 주요 20개국(G20) 국가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는 국가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해 9개국뿐이다. 어느 모로 보나 우리나라를 개도국이라고 주장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선진국은 물론 다른 개도국들이 우리의 개도국특혜 활용을 탐탁하지 않게 보기 시작한 것도 이유다. 개도국 일부는 우리나라가 개도국특혜를 활용해 농업부문 시장개방 수준을 축소시키는 것에 매우 불편해 했다.

  마지막으로 개도국특혜를 중단해도 당장은 우리 농업에 부정적 영향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되었다. 개도국특혜 중단은 미래의 WTO협상부터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에 우리의 특혜는 계속 유지되며, 현재의 농산물 관세나 농업보조금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7월 트럼프 대통령이 소위 잘사는 국가가 개도국으로 남아 시장개방 의무를 회피하거나 면제 받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를 시정하기 위한 행정명령을 발동하였다. 행정명령에 따르면 미국이 판단하기에 개도국이 아닌 국가가 계속 개도국으로 남아있을 경우 10월 말 부터 다양한 통상압력을 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사실상 개도국지위 유지에 관한 시한이 설정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우리와 경제 규모가 비슷하거나 낮은 대만, 브라질, 싱가포르 등이 연이어 개도국특혜 중단을 선언하였다. 중국도 발전정도에 상응한 기여를 하겠다고 진작 선언했다. 우리나라만이 개도국지위를 고집하기는 점점 더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었다.

  결국 국제사회가 우리나라를 개도국으로 인정해 줄 가능성은 없는 가운데 이를 고집해서 미국으로부터 자동차 관세 부과 등 통상압박을 받느니 일단 개도국 특혜 중단을 선언하고 우리 농업의 미래 피해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차근히 대처해 간다는 관점에서 정부가 개도국특혜 중단을 결정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인이 정부의 결정에 반발하는 것은 개도국특혜 중단 선언과정에서 직접 이해당사자인 농업인과의 대화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농업인의 시각과 눈높이에 맞춰 진심어린 마음으로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설득했어야 했는데 정부는 이에 미흡했다. 또한 비록 당장은 아니더라도 개도국특혜 중단은 미래의 한국 농업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도 있다.

  특히 식량안보의 핵심인 쌀은 그동안 우리나라가 체결한 많은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예외로 취급되어 500%가 넘는 높은 관세를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선진국 의무 이행으로 짧은 기간 안에 관세가 대폭 낮아지면 국내 쌀 가격의 급락과 쌀 농가의 대폭적인 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농업인들은 바로 이러한 가격 및 소득불안을 우려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책을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다.

  정부도 이를 인식하여 공익형직불제 등의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농업인간의 인식의 차이는 상당하다. 이는 주로 FTA 대책으로 그동안 정부가 제시한 다양한 정책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데 기인한다. 결국 그동안 쌓여온 농업계의 정부 불신이 개도국지위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WTO협상 추이를 보건대 당분간 WTO협상이 진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내년엔 미국의 대선이 예정되어 있어 앞으로 2~3년은 협상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설령 협상이 재개된다고 해도 지금까지 근 20여 년간 첨예하게 대립해온 쟁점들이 단시간 내에 눈 녹듯이 해결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결국 우리에게 미래를 대비할 시간은 있다. 가격불안 등에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장치마련도 중요하지만 농업계가 가지고 있는 농정에 대한 불신을 해소할 상호 신뢰구축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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