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께 전화 좀 드려라. 종일 얼마나 적적하시겠니.” 언젠가부터 빠지지 않는 엄마의 당부다. 어린 시절 뛰놀던 외가댁 모래 놀이터가 최신식으로 바뀌어 가는 동안, 정정하셨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누군가의 살뜰한 관심이 필요한 나이에 접어드셨다.

  평일 내내 고등학생 동생에게 모든 힘을 쏟은 엄마지만, 주말에는 부모님만 남은 허전한 집에 부산스러움을 만들러 간다. 생활반경이 제한되며 부쩍 우울해하시는 어머니의 기분과, 매번 달라지는 아버지의 기억력을 살핀다. 생전 살가운 적 없었던 아빠도 큰아들은 알아보는 당신 어머니의 한 끼 식사를 챙기러 가곤 한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걱정을 놓지 못하던 엄마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던 것은 최근에 신청한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방문요양보호서비스다. 적적한 일상에 사람이 오는 것 자체가 좋고, 꼼꼼히 생활을 살펴줘 감사하다며 이야기를 늘어놓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 중 37.1%는 부모의 노후를 가족과 정부·사회가 부양해야 한다고 답했다. 6년 전 조사와 비교했을 때 스스로 해결하거나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은 감소하고, ‘가족과 정부·사회가 부양해야 한다는 생각이 증가한 양상이다. 당연하다. 노쇠한 기력에서 오는 무력감이나 인지능력 저하를 부모 스스로 온전히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족과 정부·사회의 돌봄 기능이 강조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엄마 아빠가 노인이 되는 2050년에는 생산연령인구 1.4명이 노인 한 명을 부양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노인 부양의 부담이 늘 때 자식의 마음 씀은 얼마나 줄어도 되는 것일까. ‘가족과 정부·사회가 함께 부양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각각의 부담 비율을 어떻게 헤아리는 것일까. 문득 그럼에도 변함없이 매주 친정을 찾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진다. 앞으로 30년 후에 나는 지금의 엄마만큼 마음을 쓸 수 있을까? 당장 엄마가 잘 지내는지 전화 한 통 하지 않는 내 모습은 무엇이란 말인가.

|김예정 기자 bree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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