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승 씨는 "정신과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이비인후과와 내과에 가듯이 정신과를 찾는 문화가 형성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병원 가는 건 여전히 무서운 일이다. 서늘한 공기, 희미한 약품 냄새, 그리고 흰 가운의 사람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술도 좀 적게 마실걸.’ 흰 가운을 걸친 그들 앞에 서면 어느새 위축되어 있다.

  여기 화면 속 나란히 앉은 세 남자가 있다. 사소한 일상 대화부터 재치있는 농담까지, 이들이 보여주는 남다른 케미에 손가락은 자꾸 다음 영상을 향한다.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이들 모두 의사란 점이다. ‘친구 같은 의사를 외치며 가운을 벗은 세 친구.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 헬프(닥터프렌즈 구독자 애칭)들의 정신 건강을 책임지는 요정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진승(의예과 04학번) 씨가 오랜만에 찾은 안암골에서 의사 유튜버의 삶을 들려줬다.

친구 같은 의사들, ‘닥터프렌즈

  “사람들 사이에 퍼진 잘못된 의학 지식을 바로잡아드리고 싶었어요.” 오진승 씨가 유튜브 활동을 계획하게 된 건 군의관 시절 사귄 두 친구와 친근하고 유익한 의학 유튜브를 만들기로 마음을 모으면서부터다. “선후배 의사들이 책과 TV를 통해 의학 정보를 알리는 노력을 많이 해왔지만, 아직 유튜브에는 얼마 없더라고요. 우리가 한번 시작해보자 생각했죠.”

  세 친구는 병원의사하면 떠오르는 무거운 이미지를 벗고자 했다. 딱딱하고 어려운 의학용어를 일상언어로 풀어내고, 의학 정보들 사이에 유머를 녹여냈다. 말 그대로 시청자들의 의사 친구가 되어준 것이다. “대부분의 기존 의학 채널은 의사 눈높이에서 질병을 설명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유익한 영상이라도 재미가 없으면 눈이 안가잖아요. 시청자들과 눈높이를 맞추자고 생각했습니다.”

  ‘친근한 의사를 지향하는 그들이지만, 마냥 재미만 추구하는 건 아니다. 흥미 위주의 콘텐츠를 다루더라도 메시지 한두 가지는 꼭 넣는 게 원칙이다. “영상이 너무 무거우면 비전공자들이 지루하게 느낄 수 있지만, 질환으로 고통받는 분들이 있는 상황에서 이걸 가볍게만 다룰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 지점이 항상 고민입니다.” 그들의 고민이 무색하지 않게, 어느덧 40만 명을 넘긴 헬프들이 세 친구의 영상을 통해 도움과 즐거움을 얻고 있다. “기대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저희 영상을 좋아해 주세요. 신기하기도 하고 참 감사하기도 해요. 더 좋은 콘텐츠로 보답해드리고 싶습니다.”

  인기 유튜버라 해서 남다른 학창시절을 보낸 건 아니다. “의대 동기들이 제가 유튜브 하는 걸 되게 신기해해요. 특별히 잘나지도, 모나지도 않은 학생이었거든요.” 오진승 씨는 평범한 학생, 평범한 의사로서 의 경험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한다. “‘휴학하고 해외여행을 가서 콘텐츠를 구상해야 하나?’,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가면 그게 콘텐츠가 된다고 생각해요. 저희도 각자의 과정을 성실히 밟았기에 지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거니까요.”

공감하되 매몰되지 않을 것

  오진승 씨가 정신건강의학을 전공하겠다 결심한 건 본과 3학년, 정신과 병동 실습을 돌던 때였다. “실습 전에는 조금 무서웠어요. 정신과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환자들이 저를 되게 반겨주더라고요.” 영화에서 보여주는 감옥 같은 정신과 병동은 옛말이었다. 환자들과 땀 흘려 탁구를 하고, 그들과 오래도록 대화를 나누면서 정신 질환이 불치병이 아니라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과거에는 정말로 환자들을 수감하는 분위기였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때는 제대로 된 약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다양한 치료법도 나왔고, 질환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습니다.” 선입견이 깨진 순간, 그는 다친 마음을 치료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올해로 정신과 10년 차에 접어드는 오진승씨는 정신과 의사만의 고충이 있다고 말한다. 환자와의 거리를 조절하는 것이다. “제가 진심으로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환자들은 다 눈치채요. ‘공감적 경청을 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이 경청이 쉬운 일이 아니다. 환자의 감정에 너무 다가가도, 너무 멀어져도 안 된다. “감정은 전염되거든요. ‘나도 저 상황이었으면 힘들었겠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하는 생각이 종종 들어요. 하지만 환자가 슬프다고 제가 울 수는 없잖아요. 저는 의사니까요.” 공감하되 매몰되지 않는 것. 그 아슬한 줄타기를 해내는 게 그의 일이다.

  수많은 감정을 마주하는 오진승 씨에게는 자신만의 멘탈 관리철칙이 있다. “모셨던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어요. ‘퇴근하면 모든 걸 다 잊으라.’ 환자 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일이 많더라도, 다 잊고 충분히 쉬라고 하셨어요. 그래야 내일 환자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까요.” 그는 이 조언이 비단 의사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저녁 있는 삶이라고들 하잖아요. 퇴근하고 나서 뭔가를 배운다든가 하는 계획이 있으면 일도 더 재밌게 느껴지더라고요. 퇴근 후에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게 현대인들에게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고된 의사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순간은 역시 환자가 건강해지는 걸 볼 때다. “대부분의 만성 조현병 환자들은 밖에 잘 안 나가려 하고, 사람 눈도 잘 못 마주쳐요. 집에만 있으려고 하죠. 이런 분들이 직업을 갖고, 사회적 활동을 시작하는 걸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 없어요.” 직접 만든 마카롱을 손에 들고 병원을 찾은 환자, 손수 꽃병을 만들어 감사 인사를 전하는 환자 .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에 자연스레 미소가 퍼 졌다. “정신질환 환자도 적절히 치료받으면 사회적으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로 일해온 10년 동안 제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망설이지 말고 병원을 찾아주세요

  최근 들어 정신과를 찾는 20대가 부쩍 많아졌다. 대학 내 상담센터 이용자와 학교 근처 정신과 의원의 환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이 정신과를 찾는 주된 원인은 취업과 대인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라 한다. “취업 스트레스 때문에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자존감이 굉장히 낮은 상태예요. ‘인지 왜곡이라 해서, 자신을 비하하는 거죠.” 취업준비가 길어질수록 주변 연락을 끊게 되고, 사람과의 교류가 단절되면서 우울감은 자꾸 커지게 된다.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이다. “단순히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상태가 호전되는 분들이 많아요. 잠을 못 잔다든가, 식욕이 없다든가 생활에 직접 영향을 받는 상황이라면 약물치료도 병행할 수 있고요. 말 못 할 힘든 일이 있다면 병원을 찾아주세요.”

  오진승 씨는 사람들이 정신과를 향한 선입견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그는 이메일을 통해 이런 증상이면 정신과 가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참 많이 받는다. 진료받으러 오는 사람 중에는 관련 책을 몇 권씩이나 읽고 오는 이도 있다. 병원을 찾기까지 혼자 끙끙 대며 몇 달을 주저하는 것이다. “정신과 질환에도 고혈압, 당뇨처럼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게 있고, 감기처럼 잠깐 치료하면 좋아 지는 게 있어요. 개인은 잘 모르죠. 우리나라처럼 병원 가기 좋은 곳이 없는데, 고민하지 말고 쉽게 들르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정신과 방문을 두려워하는 건 진료 과정을 잘 모르는 탓도 있다. 막연히 떠오르는 무서운 이미지들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선배 병원으로 제가 직접 진료받으러 가는 영상을 저희 유튜브 채널에 올린 적 있어요. 그랬더니 보통 병원이랑 똑같은 구조라 신기했다’, ‘괜히 겁먹었던 것 같다하는 반응들이 많더라고요. 코감기 걸리면 이비인후과 가고 배가 아프면 내과 가듯이, ‘오늘 잘 못 잤어하면 정신과를 찾는 문화가 형성됐으면 합니다.”

  다행히도 세상의 시선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정신과를 찾는 20, 30대 환자가 늘어나는 현상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지만, 긍정적으로 바라볼 여지도 있어요. 젊은 층들이 정신과 진료에 대한 선입견을 많이 깨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오진승 씨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의사로서, 유튜버로서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상처받은 그대, 망설이지 말고 문을 두드려라. 그는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이동인 기자 whatever@

사진양가위 기자 flee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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