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4 16:41 (수)
뜯겨 나간 홍콩 지지 대자보, 그래도 연대는 계속된다
뜯겨 나간 홍콩 지지 대자보, 그래도 연대는 계속된다
  • 안수민·이동인 기자
  • 승인 2019.11.18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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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 부탁한 홍콩 학생들…“감정 깊어지기 전에 대화 나서야”
승리하라 홍콩 정경대 후문에서 학생들이 'VICTORY For HongKong'을 외치고 있다.
승리하라 홍콩
정경대 후문에서 학생들이 'VICTORY For HongKong'을 외치고 있다.
하나의 중국 중국인 학생들이 정경대 후문에 붙인 'One China' 포스트잇들이다.
하나의 중국
중국인 학생들이 정경대 후문에 붙인 'One China' 포스트잇들이다.

 

 홍콩시위 대자보 훼손 사건을 계기로 교내에서 학생들 간에 많은 논쟁이 이어졌다. 11일 정경대 후문에서는 홍콩시위를 지지하는 내용의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지부장=연은정, 노동자연대) 대자보가 훼손돼 소동이 일었다. 이후 다른 단체들도 홍콩시위를 지지하는 대자보를 잇달아 게재하자 일부 학생들이 반박대자보를 게시해 홍콩시위를 규탄하고 나섰다. 시위를 지지하는 이들과 반대하는 이들이 정경대 후문 대자보 앞에서 각각 무리를 이뤄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양측 간에 욕설과 혐오표현이 오가기도 했다.

 

번이나 훼손된 홍콩 지지 대자보

 11일 오후 3시 정경대 후문에 부착한 노동자연대의 홍콩시위 지지 대자보가 일부 학생에 의해 오후 420분경 뜯겼다. 노동자연대가 오후 7시에 같은 대자보를 다시 부착했으나 한 시간도 채 되기 전 다시 훼손됐다. 오후 810분 대자보를 세 번째로 붙였으나 940분경 대자보가 또다시 훼손됐다는 제보가 노동자연대에 들어왔다. 12일 오전, 4번째 대자보를 부착한 후 훼손 시도가 한 차례 더 있었으나 학생들이 저지해 실패로 끝났다.

 정경대 후문 대자보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11일 밤 중국 유학생 모임이 부착한 반박대자보와 함께 홍콩시위를 폭력, 테러라고 주장하는 입장문도 여럿 붙었다. 12일 저녁에는 원 차이나(One China)’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빨간색, 노란색 쪽지들을 부착해 오성홍기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노동자연대가 타 단위에 긴급히 연대를 요청해 한국사회연구회, 대학원생노동조합, 한국근현대사연구회 등에서 홍콩 항쟁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51대 서울총학생회 ‘SYNERGY’(회장=김가영)는 대자보를 훼손하지 말라는 입장문을 게시했다.

 연이은 대자보 훼손으로 한국과 중국 학생들 간에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12일 정오 한 한국 학생과 중국 유학생들이 대자보 내용을 두고 대치했다. 당시 언쟁을 벌였던 정경대 17학번 안모 씨는 학생에게는 대자보를 쓰고 붙이고 보존할 권리가 있다대자보를 훼손하고, 붙인 사람을 촬영해 조롱하는 것은 진리와 자유의 장인 대학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안 씨와 다툼을 벌인 중국 유학생은 한국 학생이 먼저 욕을 해 언쟁이 벌어진 것이라며 중국 학생들이 붙인 대자보와 국기도 뜯겨 화가 났다고 말했다. 중국인도 아닌데 왜 한국 학생이 참견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후에도 한국 학생과 중국 학생들은 서로를 향해 언성을 높였다. 홍콩 지지 메시지를 적는 사람을 중국 학생이 촬영하기도 하면서 분위기는 더 험악해졌다. ‘고파스’, ‘에브리타임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정경대 후문 대자보 상황과 학생들의 갈등 모습을 담은 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왔다.

 대자보 훼손 시도가 계속되자 노동자연대는 대자보 앞에 부스를 설치해 선전전을 하며 홍콩시위를 지지하는 학생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받았다. 노동자연대 연은정 지부장은 한국 학생, 홍콩 유학생, 중국 유학생 등 여러 학우의 제보 덕분에 훼손 상황을 빠르게 알 수 있었다홍콩 항쟁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대자보를 계속 복구했다고 말했다. 고려대뿐 아니라 타 대학에서도 홍콩 항쟁을 지지하는 대자보가 훼손되는 등 같은 문제가 벌어지고 있어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책을 고민 중이다라고 말했다.

 

포기하지 않는다, 응원해 달라

 13일 오후 7시 학생회관 2층 생활도서관에서는 홍콩 민주항쟁 왜 지지해야 하는가?’ 토론회가 열렸다. 행사를 주최한 노동자연대 관계자는 학교 측에 장소 대관을 요청했으나 폭력사태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생활도서관 측에서 공간을 내줘 급히 토론회를 열 수 있었다고 말했다. 행사는 2시간 정도 진행됐고, 행사 후에는 학생회관 앞에서 간이 집회가 열렸다. 우려했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주최 측 추산 200여 명이 모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인파가 모여 앉을 공간이 부족하기도 했다. 자리가 마땅치 않은 사람들은 바닥에 앉아 목소리를 보탰다. 참석한 인원은 홍콩인 유학생과 한국인 학생, 졸업생이 다수였고 중국과 티베트 국적 유학생도 소수 있었다. 한국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였다.

 토론에 참석한 한 티베트 유학생은 티베트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우리는 자유와 인권을 사랑하는 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발언했다. 홍콩 유학생 D 씨는 어제는 대학에 최루탄이 터졌다두려워하는 홍콩 사람들과 함께해달라고 말했다. 자신을 홍콩 중문대학교에서 온 교환학생이라 밝힌 B 씨는 지금 당장이라도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홍콩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라며 홍콩 친구들과 가족들이 더 위험하단 걸 알기에 오늘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홍콩은 포기하지 않으니 우리를 응원해달라는 말을 전했다. 누군가 선창한 광복홍콩(光復香港)’에 마스크를 쓴 모두가 시대혁명(時代革命)’으로 답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토론회에 끝까지 자리한 어느 중국인 학생은 홍콩이 독립이 아닌 일국양제 체제에서의 자유를 외치는 것이라면 그건 타당한 주장이라며 그런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공산당 정부에 동조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그는 중국인 모두가 홍콩을 비난하는 건 아니다중국인 중에도 지지자가 있음을 알아달라고 말했다. 한동희(경영대 경영15) 씨는 중국 학생과 홍콩 학생들 사이에 건설적인 토론이 더 이어질 수도 있었을 텐데 주어진 시간이 적었다고 아쉬워하면서도 홍콩 학생들과 소수 중국 학생들의 생각을 직접 들을 수 있어 뜻깊었다는 소감을 전했다.

 

엇갈리는 생각들토론의 장 마련해야

 15일 오전 주한 중국대사관에서 중국인 유학생들의 대자보 및 현수막 훼손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입장문에는 캠퍼스에서 감정적 대립이 발생해 매우 안타깝다는 입장과 함께 홍콩시위를 폭력을 사용해 평범한 시민에게 무차별적으로 해를 가한 행위라 지칭한 내용이 담겼다. 이에 노동자연대를 비롯한 여러 단체가 같은 날 오후 4시 학생회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시진핑의 홍콩 탄압 지시 철회등을 주장하며 정경대 후문까지 행진했다.

 홍콩 사태를 둘러싼 학생들의 시각은 엇갈렸다. 중국인 학생 C 씨는 중국 유학생이 대자보를 훼손한 건 잘못된 행동이라면서도 중국에서는 경찰이 아닌 시위 참여자가 폭력을 사용한다는 증거가 많다고 말했다. 또 그는 외국 뉴스는 경찰이 폭력을 휘두르는 영상이나 증거를 많이 보여주는데 이는 조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홍콩에서 온 한 국제학부 학생은 한국에 온 중국 유학생들은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도 중국 뉴스만 믿는 이유를 모르겠다시야를 넓히고 진실을 깨닫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국 학생을 향한 무차별적 비난이 거세지는 걸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정경대 16학번인 김모 씨는 고파스에서 중국 학생들의 행동이 비이성적이라 인간 취급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 글을 봤다제국주의에 침탈당하고 민주화를 위해 피 흘린 대학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당한 행위에 분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가 수호하는 가치 아래에서 분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학내 구성원들은 감정적 충돌이 아닌 토론을 통해 갈등을 극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중국인 학생 C 씨는 모든 사람에게는 발언의 자유가 있다중국 사람들의 입장도 무작정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콩 유학생 D 씨도 중국인에 대한 혐오표현을 자제하고 이성적인 토론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관(정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학내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두고 홍콩 사태를 남의 나라 일이라고만 생각해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는 게 진짜 문제라며 홍콩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자기 생각을 민주적 방식으로 개진한다면 건강한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안수민·이동인 기자 press@

사진두경빈 기자 hayab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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