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생 또래의 홍콩 청년들은 지금 어떤 처지에 놓여 있을까. 홍콩시위 현장에 다녀온 이준성(이과대 수학13) 씨가 홍콩 청년들의 고난과 외침을 취재했다.

11일 오전, 홍콩의 금융 중심가인 센트럴에서 시민들과 경찰이 대치했다
11일 오전, 홍콩의 금융 중심가인 센트럴에서 시민들과 경찰이 대치했다
10일 밤, 몽콕 도로 곳곳이 시위대가 쌓아 올린 불길에 막혔다.
10일 밤, 몽콕 도로 곳곳이 시위대가 쌓아 올린 불길에 막혔다.

 10일 자정, 홍콩의 번화가 몽콕(旺角) 거리를 새까만 연기가 뭉게뭉게 메웠다. 검은 마스크의 시위대 수백 명은 도로 곳곳에 물건을 쌓고 불을 질러 거리를 점거했다. 시위대가 화염에 휩싸인 바리케이드를 둘러싼 채 香港人!(홍콩인들이여!)”를 외치자,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報仇!(복수하자!)”고 소리쳤다. 홍콩 대학생이 시위 현장에서 의문의 추락으로 사망한 지 이틀째,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도시 전역에서 고조되고 있었다.

 분노의 최전선에는 홍콩 청년들이 있었다. 경찰이 발포한 최루탄 때문에 붉게 물든 눈과 얼굴을 식염수로 닦아내는 시위대원은 대부분 앳된 얼굴의 학생이었다. 최루탄 연기와 공포탄 소리가 곳곳에 퍼지는,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홍콩 거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들. 그들은 한손엔 화염병, 다른 한손엔 벽돌을 쥐며 폭력마저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들이 그렇게까지 분노한 이유는 무엇일까. 시위 현장에서 만난 대학생 그웬돌린 웡(21·가명) 씨는 현재의 홍콩 청년들은 저주받은 세대(cursed generation)”라고 주장했다. 낮에 시내 한 레스토랑에서 서빙 알바를 하고 오는 길이라는 웡 씨는 사실 열심히 일해서 월급을 모아도 별 쓸모가 없다“200제곱 피트(5) 정도의 쪽방에 살려고 해도 월세로 1만 홍콩달러(150만 원)는 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1997년 주권반환을 기점으로 중국 본토의 막대한 자본이 홍콩에 유입되며 2003년 이후 홍콩의 주택가격은 5배 가까이 상승했다. 반면 올해 홍콩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37.5홍콩달러(5600), 최저임금법이 제정된 2010년 이후 연 평균 3%가량 상승하는 데 그쳤다. 자연스레 소득 불평등은 심화됐다. 홍콩의 지니계수는 세계 최고 수준인 0.539(2016년 기준)로 치솟았다.

 반환 이후 홍콩으로 유입된 건 중국의 자본만이 아니다. 매년 수만 명에 달하는 본토인들이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고 홍콩으로 이주해 왔다. 현재는 740만 명의 홍콩 전체 인구 중 20%150만 명의 중국인이 홍콩에서 거주한다. 홍콩 청년들은 입장에선 가뜩이나 얼마 없는 양질의 일자리를 두고 중국 본토 출신과도 경쟁을 하게 된 셈이다.

 검은 모자에 검은 마스크를 쓰고 나온 에디 람(23·가명) 씨는 한껏 격앙된 목소리로 이번에 우리의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홍콩의) 미래는 없다며 행정장관 직선제 등 시위대의 ‘5대 요구를 힘껏 외쳤다. 람 씨는 물론 홍콩이 중국 역사의 일부는 맞지만,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또한 중국이 홍콩을 반환 받으며 약속한 역사라고 했다.

 시위대는 새벽이 지나고 해가 뜰 때까지 거리를 지켰다. 경찰이 소방차를 끌고 와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를 쏴댈 때도 잠시 흩어졌을 뿐 금세 다시 모였다. 인도에 설치된 보도블럭을 하나둘씩 도로에 흩뿌리며, 그날 있을 ‘3파 투쟁(파업·휴교·불매)’을 위해 점거를 이어갔다. 몇 시간 뒤, 사이완호(西灣河) 지역의 한 도로에서 검은 복장의 20대 남성이 경찰이 쏜 실탄에 쓰러졌다.

 홍콩 시위가 격화하며 사상자가 잇따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폭력이 정당화돼선 안 되겠지만, 공정한 사회에 대한 홍콩 청년들의 간절함을 듣고 왔기에 안타까운 마음도 크다. 부쩍 날이 추워졌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하루 빨리 봄이 오길 바란다.

 

이준성(이과대 수학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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