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4 16:41 (수)
눈 맞추는 학생 그리워··· “연필로 써야 흔적이 남습니다”
눈 맞추는 학생 그리워··· “연필로 써야 흔적이 남습니다”
  • 김영현 기자
  • 승인 2019.11.24 0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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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 필기, 복습 모두 ‘전자식’ 대학 풍경
수업이 한창인 '전기회로 Ⅱ'강의실에서 한 학생이 웹서핑과 SNS를 하고 있다

  2020학년도 수능이 끝났다. 벗겨지지 않을 정도로 때가 묵은 필통, 최선을 다한 수험 시절의 한 폭이다. 색색의 파스텔 형광펜, 알록달록한 잉크 펜을 사들이는 재미도 아기자기한 추억의 한 페이지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했다. 연필을 잡은 손에 얼마나 많은 땀이 잡혔던지 다른 한 손은 알 턱이 없었다. 학생들 모두 그런 시절을 보냈다.

  이번 달 강의실 풍경을 돌아봤다. 파릇파릇했던 19학번도 새내기 생활을 마감할 시기다. 강의실 책상 위에는 새하얀 공책 대신 노트북, 태블릿PC, 블루투스 키보드가 올려졌다. 여전히 손으로 강의 내용을 받아적는 학생도 있지만 대부분 전자기기가 익숙하다. 수험생 시절 땀을 쥐던 손에 나머지 한 손까지 빌려 키보드 위에 얹었다.

 

떨치기 힘든 딴짓의 유혹

  #. 21영상이론강의실. 강의를 듣는 32명의 학생 중 노트북 사용자는 22명이었다. 7명은 전자기기 없이 손으로 필기했고 3명은 태블릿PC를 사용했다. 김형신(미디어학부) 교수는 빔프로젝터에 수업 자료를 띄웠다. 학생 대부분이 수업에 집중했다. 한 시간 경과 후 두 번째 줄에 앉은 학생이 노트북으로 페이스북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뒤쪽에 앉은 학생은 노트북에 영화 <주토피아>를 틀어 보기도 했다.

 

  교복을 벗어 던진 대학생에게 노트북은 필수품이 됐다. 신속성과 편리함 때문이다. 윤예원(문과대 영문18) 씨는 교수님의 강의 속도에 맞춰 필기하려고 노트북을 사용한다손으로 필기하다 보면 강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집중이 힘들다고 말했다. 노트북을 쓰는 이유로 편리함을 꼽은 조문기(공과대 기계공학14) 씨는 “PPT를 하나하나 인쇄하지 않아도 돼 편하다PPT 강의 자료가 많을 때는 노트북을 사용한다고 전했다.

  노트북은 학습 도구를 넘어 장난감이 됐다. SNS, 영화·드라마 감상, 웹툰 보기, 쇼핑, 웹검색, 게임 등 수업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해졌다. 학생들은 수업에 집중하다가도 틈만 나면 카카오톡을 열고 인터넷뉴스를 훑었다. 졸려서, 지루해서, 힘들어서다. 윤예원 씨는 수업에 흥미가 떨어지면 딴짓하게 된다너무 집중이 안 될 때 SNS나 쇼핑, 다른 수업 과제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하는 사람도 여럿 봤다는 문과대 16학번 이모 씨도 강의 중 웹툰을 봤다. 딴짓하는 학생들을 보며 최승연(공과대 기계공학14) 씨는 모두가 항상 다 하는 거 아니냐아무런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일상이라 표현했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딴짓을 이미 알고 있다는 입장이다. “신경은 쓰이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아요. 학생들이 수치심이나 창피함을 느껴 오히려 수업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죠.” 신창호(사범대 교육학과) 교수는 딴짓하다가도 다시 수업에 정상적으로 임하는 경우가 많다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신뢰한다고 학생에 대한 믿음을 보였다. 심재만(문과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대적 특성을 들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가족과의 외식 자리 혹은 친구들과의 자리에서 앞사람과 무관하게 핸드폰에 눈을 두는 것이 일상인 세대라고 생각해요. 고등학생이 아닌 성인이기에 책임은 본인이 지는 거죠.” 조영헌(사범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딴짓하는 학생들이 다수 발견될 경우 적절한 때에 지적하기도 한다고 했다.

 

눈 맞춤 없는 수업

  딴짓하는 학생도, 수업을 열심히 듣는 학생도 모두의 시선은 화면에 고정됐다. 동시에 교수와 눈을 맞추며 소통할 가능성도 적어졌다. 사범대 18학번 김모 씨는 강의 속도가 빠르면, 수업 내용에 집중하기보다 필기하면서 따라가기만으로도 벅차다다소 기계적으로 받아적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문과대 16학번 이모 씨도 어느새 교수님의 농담까지 키보드로 적고 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필기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딴짓하지 않는다고 항상 집중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교수들은 아이컨택트없는 강의실에 아쉬움을 표했다. “학생들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는 강의에 익숙한 나로서는 요즘 강의실 풍경이 좀 낯설기도 해요. 나도 사람인지라 정서적으로 학생들과 거리감을 느낄 때도 있어요.” 신창호 교수가 속마음을 털어놨다. 조영헌 교수도 노트북이나 태블릿PC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필기하는 학생과는 아무래도 아이컨택트가 이뤄지지 않아 정서적인 거리감을 느낄 때가 많다고 했다. 유미향(본교·국어교육학) 강사 역시 학생과의 소통을 중시했다. “노트북보다는 눈 맞춤을 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학생과 상호작용이 더 수월해요. 특히 질문을 잘하는 학생이 좋아요.”

 

필기의 진화, 태블릿PC

  #. 이미지를 통해 수업 내용을 설명하는 일이 유독 잦은 바이러스학강의실이었다. 19일 강의를 듣는 64명의 학생 중 22명이 태블릿PC로 필기했다. 노트북 사용 학생은 28, 손으로 필기하는 학생은 14명이었다. 안병윤(생명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칠판에 바이러스 모형을 그리고 바이러스가 신체에 침투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학생들은 태블릿PCPPT를 띄워놓고 여백을 확대해 그림을 그렸다. 전자펜만 쥐고 색깔을 바꿔가며 다채롭게 필기했다. 강의 중간 한 학생은 심심한지 PPT에 실린 과학자의 사진에 수염을 그려 넣기도 했다.

 

  수업 중 태블릿PC 사용을 선호하는 학생도 점차 늘고 있다. 최승연(공과대 기계공학 14) 씨가 복잡한 수식이 나열된 아이패드 화면을 보여줬다. “수식 정리를 자주 하는 공대생은 패드가 편해요.” 배원준(사범대 교육15) 씨도 태블릿PC를 사용하는 이유로 수식 및 그래프 활용의 용이성을 꼽았다. “노트북으로는 수식이나 그래프를 빠르고 정확하게 필기하기 어렵지만, 태블릿으로는 자유롭게 쓸 수 있죠. 또 제가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은 공간 잘라내기, 복사, 붙여넣기가 가능해서 손으로 필기할 때처럼 일일이 그래프를 다시 그릴 필요가 없어요.” 배 씨가 태블릿PC를 선호하는 것이 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노트북으로 필기할 때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웹툰을 보거나 스포츠 기사를 봤다태블릿으로 필기할 때는 고도의 집중이 필요해 딴짓한 경험이 없다고 말했다.

 

아날로그의 맛

  노트북과 태블릿PC가 일상화되자 전자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강의도 생겼다. 정치외교학과 전공 동아시아와 세계정치’, 철학과 전공 인식론등이 그렇다. 전자기기를 제지하지 않는 다른 강의실과는 사뭇 공기가 달랐다. 쉬는 시간까지 노트북으로 용무를 보던 학생도 수업이 시작하자 가방에서 이미 낡아진 공책을 꺼냈다. 쉼 없이 울리는 타자 대신 사그락사그락 종이가 한 장씩 넘어갔다. 전자기기 허용 여부와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아날로그식 필기를 택하는 학생도 있다. 이소곤(문과대 언어17) 씨는 노트북이 너무 무거워 들고 다니기 힘들다는 이유로 공책에 필기했다. “수업 시간에 일단 받아 적지만 모든 내용을 이해할 수는 없어요. 이후에 다시 읽으며 이해하는 편이죠.” 문과대 16학번 이모 씨는 더 집중하고 싶을 때노트북이 아닌 공책 필기를 택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학생들은 익숙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구조화하기 편리해서손 필기를 고수한다고 전했다.

  교수가 직접 디지털과 아날로그 방식을 혼용하는 강의도 있다. ‘동양사개론에서 조영헌 교수는 한 학기에 두 차례, 학생이 직접 손으로만 필기해 공책으로 제출하는 손과제를 낸다. “전자기기를 통한 필기는 유비쿼터스 지식을 활용하는 데 정말 유용하지만 손으로 직접 쓰고 그릴 때 강의 내용을 곱씹으며 비판해볼 수 있어요. 학생들에게 아날로그식 과제를 내줘 이 부분을 보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요.” 신창호 교수는 교육학과 전공 수강 학생들에게 종종 손으로 직접 쓰는 것의 장점을 설명한다. “손으로 썼다 지운 내용은 어떤 형태건 흔적이 남죠. 하지만 ‘Delete’ 키를 누르면 흔적도 없이 모조리 싹 없어져 버려요. 자신의 삶도 전자기기 사용하듯 모조리 지워버린다면 좀 서글프지 않을까요.” 신 교수의 농담에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 디지털 혁명이 잠식한 세상에도 여전히 대학이 아날로그의 추억을 간직한 공간일 수 있을까. 지켜볼 일이다.

 

김영현 기자 carol@

사진두경빈 기자 hayab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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