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잊혀진 역사가 있다. 6세기 중반까지 철을 이용한 해상교역으로 위용을 떨쳤지만, 삼국에 가려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가야의 역사다. 그동안 빛을 보지 못한 가야사 연구가 최근 대통령의 국정과제 지시, 지자체의 합심으로 어느 때보다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영호남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사업이라는 대통령의 제안과 함께, 가야문화권으로 여겨지는 영남지역부터 호남 일부까지 지자체 중심으로 가야사 연구와 복원사업이 급물살을 탔다.

 최대 규모의 복원사업이지만, 학계 연구자들은 성급하게 추진되면 복원이 아닌 역사를 왜곡하는 결과가 나올 거라 우려하고 있다. 가야문화권의 공간적 범위 등 기본적인 토대가 아직 확립되지 못한 상황에서 지자체들이 예산을 지원받아 복원사업에 대거 참여하면 가야사의 실체를 올바르게 규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야문화권 유적 분포의 밀도를 나타낸 지도이다. 진주, 함안, 성주 등 영남과 장수, 남원 등 호남까지 유적의 분포를 확인할 수 있다. 일러스트 | 장정윤 전문기자
가야문화권 유적 분포의 밀도를 나타낸 지도이다. 진주, 함안, 성주 등 영남과 장수, 남원 등 호남까지 유적의 분포를 확인할 수 있다. 일러스트 | 장정윤 전문기자

 가야사 복원사업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17년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가 포함되면서부터다. 국가 주도의 가야사 연구와 복원은 김대중 정권 때도 김해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영호남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사업 규모는 이번이 처음이다.

 당시 학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가야사 연구가 삼국에 비해 소외되고, 유적 보존도 미흡했다고 정부의 결정을 반기는 연구자도 있었지만, 우려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당시 한국고대사학회장이었던 하일식(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학회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대통령의 지시로 진행되는 사업은 지자체의 전시관 건설이나 지역축제 등 외형에 치중된 사업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학계의 우려가 깊어진 가운데, 문화재청은 201712가야문화권 조사·연구와 정비사업의 세부 추진계획을 발표해 사업의 출발을 알렸다. 학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실행 계획을 마련했고, 향후 추진과정에서도 전문가 자문을 거쳐 체계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양숙자 학예연구관은 학계의 우려를 문화재청도 인식했다조사·연구가 선행되지 않은 복원, 정비는 진행하지 않도록 제한했다고 설명했다.

 

곽용환 고령군수가 '가야문화권 지역발전 및 영호남 화합을 위한 포럼'에서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곽용환 고령군수가 '가야문화권 지역발전 및 영호남 화합을 위한 포럼'에서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호남까지 퍼진 가야사 연구·발굴 열기

 현재 가야사 복원사업은 문화재청, 가야문화권에 해당하는 영호남 지자체 두 축으로 나뉘어 상호 교류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문화재청에선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를 중심으로 체계적인 연구를 위한 가야유적 전수조사 등 연구정보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중장기 계획을 수립했다. 양숙자 학예연구관은 지금까지는 연구기반을 닦기 위해 과거 산발적으로 진행된 연구 자료를 종합했고, 앞으로는 연구총서·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을 통해 연구자, 일반인의 자료 접근성을 향상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해, 고령 등 가야의 중심지로 기능했던 지역에선 과거부터 진행돼온 사업에 추가적으로 국비를 지원받아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추가 발굴과 정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고분군에서 나아가 가야 왕궁터 조사가 활발해지면서 김해시는 금관가야 왕궁터인 봉황동 유적의 발굴조사와 정비를, 고령군은 대가야 궁성 추정지 발굴과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가야의 영역이 호남에도 걸쳐있다는 메시지가 강조되며 전북의 가야사 유적 발굴 사업도 시작되고 있다. 올해 전북도청은 지역 내 가야사 연구 및 복원사업을 위해 정부 보조금 22억 원을 투입했다. 현재 전북에서 가야 유적 학술조사와 발굴을 진행하고 있는 곽장근(군산대 역사철학부) 교수는 그동안 지원 부족으로 학술 조사가 덜 돼 아직은 걸음마 단계지만, 대대적인 발굴을 거치면 전북에서 펼쳐진 가야의 역동적인 면모가 새롭게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신라·백제유적지구 정비사업에 비해 활발하지 못했던 가야문화권 유적 발굴과 정비에 속도가 붙으면서, 가야사 연구·복원에 동참한 학자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보였다. 남재우(창원대 사학과) 교수는 가야사 복원 이전에 철저한 연구가 선행돼야겠지만, 그동안 국가의 관심이 부족했던 가야 문화유산 보존을 강조하는 것은 가야사 연구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전했다. 이동희(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는 그동안 소외된 가야사 복원이 이뤄지면 가야사뿐만 아니라 맞물려 있는 백제나 신라사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이라 밝혔다.

 

'함께 GAYA해' 지난 15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2019 영호남 가야문화권 한마당’에는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다.
'함께 GAYA해' 지난 15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2019 영호남 가야문화권 한마당’에는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다.

애매한 문화권 범위역사 왜곡우려도

 가야사 복원사업의 탄력을 얻기 위해 영호남 지자체의 단체장들은 합심하는 분위기다. 지난 15,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2019 영호남 가야문화권 한마당에서 경남·경북·전북도지사를 비롯해 20개가 넘는 영호남 지자체장들은 양손을 맞잡았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역사문화권특별법(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안)’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특별법이 통과되면 역사문화권역 연구조사 확대와 복원된 문화유산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할 때 필요한 예산 지원도 모색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지자체를 모두 가야문화권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학계는 공통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고령, 김해부터 남원, 장수까지 영호남 20여 개 지자체가 결속된 가야문화권 지역발전 시장·군수 협의회200510개 시·군으로 시작해 2019년 현재 26개로 확대됐다. 김해나 함안, 고령같이 가야의 정체성을 오래 유지한 지역은 문화권에 확실히 속해있다고 보지만, 장수, 남원 등 호남 동부나, 창녕 등 낙동강 동부 같이 과거 백제, 신라의 경계였던 곳은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가야문화권인지 확실치 않은 지자체가 가야사 복원으로 가야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면, 역사를 실체보다 부풀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박대재(문과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현재 가야문화권으로 인식되는 지역은 5세기 말 6세기 초 대가야가 전성기를 누렸던 짧은 시기의 최대 판도라며 최대 판도였던 공간 범위를 가야문화권으로 포함하는 건 신라가 잠깐 한강 유역을 점령했다고 서울을 신라문화권으로 보는 것과 같아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현재 학계의 의견이 갈리는 남원, 창녕 등의 지역이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지로 선정돼있는 만큼, 가야문화권으로 확정할 수 없는 지역이 관광이나 기념의 목적으로 가야를 상징하게 된다면 역사 왜곡의 가능성도 발생할 수 있다. 주보돈(경북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가야와 신라, 혹은 백제의 문화적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는 지역을 관광 유치 등의 경제적 목적을 위해 가야문화권으로 단정 지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대재 교수는 그 과정에서 여러 문화가 섞여 특색을 가지는 지역의 문화가 오히려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영식(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는 과거 문화권의 영역과 현재 지자체의 범위가 달라서 지자체 내에 일부 가야문화권에 속하지 않는 지역이 포함될 순 있어도, 관련 없는 지역까지 복원 사업은 결코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며 과도한 우려라고 반박했다.

 

학계 교류 통한 실증적 가야사 조명 필요해

 이 밖에도 가야사 복원사업 추진과정에서 지자체가 자주 언급하는 표현인 사국시대(四國時代)’ 등 역사적 사실에 어긋나는 메시지는 우리 역사에서 가야사의 실체를 왜곡할 우려가 크다. 고구려, 백제, 신라 3국 위주로 서술된 고대사에 가야사까지 추가돼야 한다는 의미로 등장한 사국시대라는 표현에 가야사학자 대부분은 동의하지 않는다. 삼국시대라는 말은 고대사에 삼국의 역사만 있었다는 게 아니라, 고대국가들이 중앙집권 국가로 성장한 삼국을 중심으로 수렴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주보돈 교수는 가야를 따로 빼기 시작하면 부여, 마한 등 다른 고대국가까지 계속 사국, 오국시대로 포함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렇게 지자체의 가야사 복원사업에 촉발되는 역사 왜곡의 우려는, 그만큼 가야사 연구의 토대가 미약하다는 걸 방증한다. 가야사를 입증할 수 있는 사료(史料)가 부족했고, 그로 인해 촉발된 학계 내 여러 이견이 여유를 갖고 교류·조율되지 못했다. 현 상황에서 가야사 복원사업이 왜곡 없이 진행되기 위해선 학계 내 원활한 교류를 바탕으로 한 실증적인 가야사 연구의 자세가 필요하다. 박대재 교수는 가야사 복원사업이 진행되기 전에 이뤄져야 했지만, 지금이라도 학계를 중심으로 가야사의 시공간적 범위 확정과 같은 토대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보돈 교수는 가야사 복원에 임하는 학자들은 학자적인 양심을 갖고 역사적 실체를 파악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 | 이선우 기자 echo@

사진 | 양가위 기자 fleeting@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