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4 16:41 (수)
“시청자의 냉정한 잣대로 언론을 평가해 주십시오”
“시청자의 냉정한 잣대로 언론을 평가해 주십시오”
  • 김보성 기자
  • 승인 2019.11.24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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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 김정민(언어학과 00학번) 교우 인터뷰

 

김정민PD는"권력의눈치를보지않고시민의인정을받는언론이돼야한다"고강조했다.
김정민PD는"권력의눈치를보지않고시민의인정을받는언론이돼야한다"고강조했다.

  ‘PD수첩PD.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리지만 사실 MBC 내 기피보직이다. 권력에 날을 세우기에 늘 긴장해야 하고, 법정 다툼에 휘말리기도 한다. 시청자의 높은 안목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밤을 새우는 일도 다반사다.

  남들은 꺼릴지 몰라도 김정민 PD에게는 천직이다. 입사하자마자 PD수첩에 보내달라고 졸랐다는 그는 PD수첩을 맡아 장자연 리스트’, ‘학생부 조작’, ‘CJ와 가짜 오디션등을 보도하며 한국 사회에 굵직한 화두를 던졌다. 지금도 신입사원의 마음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를 상암동 MBC 사옥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황우석 몰락을 지켜보던 언론인 지망생

  20051122, PD수첩은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 편을 방영하며 황우석 신화에 정면 도전했다. TV 프로그램이 온 사회의 지지를 받던 과학자에게 덤벼든 것이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황우석 박사를 감쌌지만, PD수첩은 굽히지 않고 방송을 이어나가 진실을 밝혔다. 당시 언론인을 꿈꿨던 김정민 PDPD수첩이 얼마나 많은 비판에 직면했고 이를 이겨냈는지 목격했다.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전 세계적인 과학자가 가짜라는 사실을 해외가 아닌 우리나라 언론이 밝혀내서 말이에요. 아직 저널리즘이 살아있는 나라, 자정 능력이 있는 나라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PD수첩은 동경의 대상이었죠.” 그렇게 PD수첩은 어린 대학생의 마음속 원 픽이 됐다.

  김정민 PD가 언론인의 꿈을 키워온 건 고등학생 때부터다. 아침 7시 등교, 12시 하교가 일상이던 빡빡한 고등학교 시절, 방송반 활동은 김정민 PD의 숨통을 열어줬다. “방송을 만들고 보여주면 친구들이 함께 웃고 슬퍼하고 공감해줬어요. 이런 반응들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또 방송반 친구들과 다 같이 고생하다 보면 끈끈한 전우애도 생기더라고요. 힘든 과정 끝에 무언가를 달성하고, 그 결과물을 사람들과 공유하며 얻는 성취감, 그리고 뒤따라오는 유대감 덕분에 행복했어요. 그때부터 언론계 쪽 일을 하고 싶었죠.”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경험은 그가 어떤 언론인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고등학교 때 치아가 많이 안 좋았는데 그때 아버지 사업이 잘 안 됐어요. 병원비가 걱정돼서 치과엘 못 갔죠. 병원에 가면 약도 있고 의사도 있는데 돈이 없어서 참고 있어야 하는 내가 너무 슬펐어요.” 영향력 있는 소수가 아닌 힘없는 다수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가치관은 그때 만들어졌다. “돈 없어서 병원을 못 가는 과거의 저 같은 사람, 지금도 많아요. 영향력이 없는 다수의 요구라 사회적 관심사에서 후 순위로 밀릴 뿐이죠. 저는 그런 사람들의 니즈를 대변하는 언론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극한직업’ PD수첩 PD

  “PD수첩 PD의 일이란 8주에 한 번씩 시험을 보는 거예요. , 시험 점수가 전국의 시청자에게 공개되죠.” PD수첩에는 8명의 PD가 있다. 8주마다 한 번씩 자신이 프로그램을 만들 차례가 돌아온다. PD수첩 PD의 삶은 자신이 연출한 방영분이 나갈 시기가 얼마나 남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연출한 방영분이 끝난 직후에는 상대적으로 한가해요. 4~6주쯤 남겨뒀을 때 아이템을 정하고 그 이후에는 계속 취재를 하죠. 촬영을 마친 뒤 방송을 1주 정도 남기고 방송분을 편집하는 주간에는 슬리퍼에 츄리닝 차림으로 출근하고 집에 못 들어가는 날도 많아요.”

  남을 비판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부담감도 있다. 김정민 PDSNS를 하지 않는다. 심지어 카카오톡 배경 사진도 없고 프로필 이름도 ‘·’이다. PD수첩 PD를 시작하며 바꿨다. “이 일을 하다 보니 내 사생활을, 내 가족들을 타인에게 공개하는 게 두려워요. 가끔 길을 가다 누가 김정민 PD!’라고 부르면 가슴이 철렁해요. 혹시 내가 비판했던 취재원은 아닐까 걱정돼서죠.”

  고소, 고발도 피할 수 없다. 그가 장자연 리스트관련 방송을 보도한 뒤 조선일보는 김정민 PD를 비롯한 PD수첩 제작진 3명과 MBC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허위사실을 유포해 피해를 줬다는 이유에서다. 20일 재판부가 원고 측의 소송 제기를 기각했지만, 법적 책임에 대한 부담은 PD수첩 PD들이 늘 짊어져야 할 짐이다. “방영하기 전 변호사에게 법적 문제가 있는지 자문하기 때문에 실제로 처벌을 받을 거란 걱정을 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하지만 소송을 당하면 경찰서나 검찰청을 왔다 갔다 해야 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죠.”

불공정에 무감각한 어른들의 사회

  ‘분노’, ‘슬픔’, ‘허탈함’. 조작 의혹이 불거진 뒤 탈락자들이 느꼈을 거라고 많이들 추측했던 감정이다. 그런데 취재를 하며 그들을 만났던 김정민 PD는 조금 뜻밖의 대답을 내놨다. “팬들은 허망했겠지만, 정작 연습생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워낙 그쪽 바닥에서 일상적인 일이라 공정성에 대한 기대도 없었던 거죠. 저도 취재하면서 정말 놀랐습니다.”

  1년 전, 그는 비슷한 경험을 했다.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 등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만연해 있는 학생부 조작 문제를 다뤘던 대학으로 가는 길-가짜 학생부편을 준비 하면서다. 수상경력 몰아주기, 봉사활동 몰아주기는 다반사였다. 심지어 광주의 한 학교는 1등급을 받아오던 학생이 삐끗해 2등급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하자 교사가 수행평가 점수를 조작하기도 했다. 취재하며 만난 학생들은 불평등을 문제 삼지 않았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따로 관리해 주는 것도, 수상 기록을 몰아주는 것도, 봉사활동 시간을 부풀리는 것도 다 당연하게 생각 하고 있었어요. 충격이었죠. 성적순으로 차별받고 불이익을 받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국민 프로듀서의 선택을 받기 위한 경쟁과 명문대의 선택을 받기 위한 경쟁. 달라 보이지만 조작과 불공정이 만연하다는 것은 같았다. 김정민 PD는 이런 일이 벌어진 데에는 이미 불공정에 익숙해져 버린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고 말한다. “교과서는 공정을 강조하지만, 실제 사회는 불공정의 논리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요. 반칙으로 성공하는 어른들이 많죠. 사회에 나온 어른들은 점차 불공정에 무감각해져요. ‘오디션에 개입해서 결과를 조금 손봐도 괜찮지 않을까’, ‘시험 점수를 살짝 조작하는 것 정도야 별문제 없겠지하고 생각하죠. 불공정에 무감각해진 어른들 때문에 아직 때 묻지 않은 어린 학생들까지 무기력해질까 걱정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불행한 일이에요.”

시청자님, 당신의 언론을 해주세요!

  ‘PD님 프로듀스 조작 의혹 다뤄주세요!’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PD수첩 기획 ‘CJ와 가짜 오디션은 어린 시청자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방송을 제작할 때는 제작비, 법적 책임, 취재 가능성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요. 그중 가장 우선이 되는 것은 시청자가 이 방송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입니다. 잘못된 수사를 한 검사의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법적 책임을 피하려면 익명으로 처리하는 게 편하죠. 하지만 시청자의 알 권리는 충분히 충족되지 않아요.”

  시청자의 눈은 김정민 PD를 채찍질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PD수첩 PD에게 업무 끝이란 개념은 없다. 시청자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 때 시청자가 드는 회초리는 맵다. “취재가 미진해 날이 무디면 시청자가 가장 먼저 알아요. ‘하나 마나 한 방송’, ‘다 아는 내용이었다’, 이런 댓글이 가장 쓰라리죠. 시청자에게 평가받는 직업이기에 업무의 끝이 없어요. 더 많은 취재를 해서 더 나은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하면 전국적으로 부끄러운 일이잖아요.”

  영감의 원천. 가치 판단의 기준. 열정의 원동력. 이미 시청자는 김정민 PD에게 큰 의미이지만, 그는 시청자가 한 가지 역할을 더 해주길 바란다. 바로 언론에 엄중한 잣대를 들이밀고 평가함으로써 언론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일이다. 그는 지금까지의 언론이 시청자가 아닌 권력의 눈치를 봐왔다고 말한다. “언론도 어른들의 조직이라 불공정의 기준이 많이 뒤로 가 있었던 것 같아요. 조직에 미칠 피해를 걱정해서 불공정을 목격하고도 날카롭게 지적하지 못했죠. 광고주, 정치인, 권력의 눈치를 봐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는 당부한다. “권력이 아닌 시민들의 인정을 받는 게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퍼져야 해요. 언론의 본질적인 목적이 진실추구라면, 공정보도라면, 정의사회의 구현이라면 이를 잘 수행하는 언론에 박수를 쳐 주고, 못하는 언론은 질책해 주세요. 시청자가 냉정한 평가와 판단을 내릴 때 시민이 언론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2016년부터 올해까지, 4년간 매년 101명의 연습생이 시청자의 을 받기 위해 땀 흘렸다. 언론도 그래야 한다. 시장권력이 아니라 시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

김보성 기자greentea@

사진두경빈 기자hayab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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