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는커녕 삐삐도 없던 칠팔십년대. 그리고 삐삐가 유행하기 시작한 구십년대 초반까지. 그 시절 대학생들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학보(대학신문)를 보냈다. 흰 종이에 연서를 적고, 1면이 잘 보이게 학보를 접은 다음, 편지로 감싸, 우편을 부쳐, 답장이 오길 기다렸다. 편지만 보내기 쑥스러워 학보도 함께 보냈다. 나름 신원 증명을 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학보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담겼다. 편지에는 못 담은, 그런.

○…중학생 때였다. 우리는 함께 책을 읽으면서 친해졌다. 편지도 참 많이 했다. 언젠가 그걸 다 모아서 책을 내도 되겠다고 농담하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친한 친구였다. 그래서 나 대학교 졸업한 다음 날 둘이 파티할 때 결혼하자고 한 게 미안하다. 아마 모르는 사이 조금씩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때 그냥 웃어줘서 고맙다. 우리 학교 B교수의 첫사랑 얘기다. 신상 보호를 위해 내용은 일부 각색했다. 다만 결혼하자사귀자가 아니라 정말 결혼하자였다고 한다. 빠른 사람.

○…B교수는 이제 그녀가 다니던 대학의 선생님이 됐고, 그 전에 둘은 다른 결혼식을 올렸다. 지금도 친하게 지내지만 그 많던 편지는 모두 버렸다고 한다. 첫사랑 얘기가 늘 그렇듯 듣는 사람이 더 아쉽다. 그러니까 교수님. 이 얘기가 자기 얘기라면, 부탁건대 예전처럼 편지로 학보를 감싸 첫사랑에게 보내주세요. 여기 교수님만의 이유가 있습니다.

| 김태훈 취재부장 foxtr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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