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좀 적당히 좀 하세요! 참다 참다 하니까 진짜.” “당신 누구요?” 이사 온 지 2주도 안 된 어느 날, 성난 고함의 인터폰이 왔다. 조용하던 집안에 들이닥친 난데없는 호통. 놀람은 이내 불쾌로 변했다. 다짜고짜 성을 낸 연유를 따지자, 호수를 잘못 알았다는 다급한 사과와 함께 목소리는 끊겼다. 이사를 온 우리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넨 이웃과의 소동이 짧게 끝났다. 층간소음, 정말 여럿 불편하게 하는구나 싶었다.

  우리 삶에서 이웃의 자리는 어디일까. 적어도 내 기억 속에는 없다. 서로 현관을 공유하면서도, 천장과 바닥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통성명은커녕 얼굴조차 제대로 비춘 적이 없었으니. 10년간 살던 집에서 이사를 준비하다 거의 처음으로 이웃을 의식하게 됐다.

  “옆집에 모나지 않은 사람이 살았으면.” “윗집은 어린 애들이 없는 집이었으면.” 이제 이웃은 안 보일수록 좋은 존재다. 트렌드모니터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성인남녀 10명 중 4(39.4%)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고 한다. 내 삶을 챙기기도 바쁜데, 이웃에게까지 마음 주며 살기엔 벅찬 현실이니.

  며칠 전, 엘리베이터에 한 어르신이 탔다. 늘 그렇듯 불편한 마주침의 여지를 차단하려 스마트폰을 꺼내는 차, 예상치 못한 목례를 받았다. 그냥 지나칠 법한 동행의 존재를 반겨주다니. 별일도 아닌데 당황하는 바람에 응대하지 못했다. 이내 호의에 답하지 못한 머쓱함, 그리고 그간 이웃에 무관심하던 내 모습이 미안해졌다. 다음부턴 인사에 답하리라, 먼저 눈을 마주치리라.

  층간소음, 주차문제 등 아파트 생활의 갈등이 부상하면서 그 실마리를 작은 인사에서 시작하려는 노력이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서울 강남구와 광주 동구 등 다양한 지자체에서 이웃 간 인사하기 캠페인이 실시됐다.

  날로 개인화되는 세상 속에서 이웃사촌은 어렵더라도, 쉬이 외면해버리는 이웃들에게 목례는 산뜻한 출발점이다. 간단한 인사로 이웃 간 정()을 나눈다면, 불만과 오해도 어쩌면 기분 좋게 해결되지 않을까. ‘버럭소리 지르는 건 듣는 사람도 성낸 사람도 찜찜하다.

| 박진웅 문화부장 queb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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