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합리적 논쟁은 어디 있는가. 조국 전 장관 논란은 어떤 생산적인 결론이나 합의를 끌어내기보단, 극심한 의견 대립과 상호비방 속에 사람들의 피로만 가중시켰다. 그뿐일까. 어느 커뮤니티에선 매일 같이 등장하는 사소한 견해차도 조율하지 못해 싸움이 이어진다. 어쩌면 민주주의 시대에서 우리의 일상은 대화와 토론이 아니라 대립과 충돌일지도 모른다.

  갈등이 격해진 사람들은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로 취급하기도 한다. 상대방도 질 수 없으니 똑같은 모욕적 표현과 언어폭력으로 맞선다. 반대되는 입장을 경청하고, 반박 주장과 근거를 구상하고, 논리적인 말이나 글로 풀기는 어렵고 고되다. 온갖 멸칭을 동원해 상대를 깎아내려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일은 쉽고 매력적이다. 이런 유혹에 빠지면 배려와 공존이란 덕목은 헌신짝처럼 내던져지게 된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가 소중히 여겼던 민주주의의 가치들은 공허해진다. 자기성찰이나 바람직한 대안을 설득하는 대신 상대방을 모욕하고 파멸시킬 궁리에 열정을 쏟아붓는 사회, 남는 것은 구성원들의 상호 불신과 폭언에 의한 상처뿐이다.

  싸움에서 최소한의 규범은 지켜야 한다. 내가 상대방의 의견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만큼, 나의 의견에도 오류가 담길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보이는 것밖에 알 수 없기에, 나의 의견이 보편적 진리일 순 없기에 겸손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는 의견의 차이를 공존 가능한 이견으로 다루는 것에서 시작된다. 다른 의견에 대한 적절한 비판이 아니라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제거 대상으로 삼는 어법은 굉장히 위험하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받는 사회에 살고 싶다면, 표현의 방법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내가 대우받고자 하는 태도로 남을 대우해주는 상호성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아무도 서로를 존중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부디 명심하시길. 말 하나하나가 가지는 무게감을. 익명이란 가면을 쓴다고 예외가 될 순 없음을.

| 이정환 기자 ec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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