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26 21:43 (수)
석유의 저장소에서 문화가 흐르는 공간으로
석유의 저장소에서 문화가 흐르는 공간으로
  • 김태형 기자
  • 승인 2019.11.24 1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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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축기지 둘러보기
문화비축기지의 외관에서 과거 석유탱크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문화비축기지의 외관에서 과거 석유탱크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 월드컵경기장 바로 옆 거대한 문화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20179월 시민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마포 문화비축기지는 원래 1급 보안 시설로 일반인의 접근이 철저하게 금지된 석유비축기지였다. 19731차 석유파동을 겪으며 원유 공급에 차질을 빚은 우리나라는 매봉산 인근에 석유를 비축할 공간을 만들며 석유 부족으로 인한 비상사태를 대비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인근에 서울월드컵경기장이 건설되며 안전상의 이유로 폐쇄된 후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이 공간은, 2013년 시민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기존 석유탱크를 재활용한 문화시설로 탈바꿈했다.

 

탱크 내부 커뮤니티 센터에서는 작은 도서관 등 시민을 위한 각종 생활시설이 조성돼 있다.
탱크 내부 커뮤니티 센터에서는 작은 도서관 등 시민을 위한 각종 생활시설이 조성돼 있다.

얼룩진 석유탱크 안 문화공간

 문화비축기지에는 T1부터 T6까지 6개의 탱크가 존재한다. 예전에는 휘발유, 경유, 등유 등 저장된 석유의 종류에 따라 달리 쓰이는 공간이었지만, 이젠 문화시설로 모두 바뀌었다. 그중 기지 입구부터 보이는 ‘T6’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T6은 카페와 도서관이 있는 커뮤니티 센터로서 T1, T2 탱크를 문화시설로 재생하는 과정에서 해체돼 버려지는 철판을 재조립한 공간이다. 단순히 기존에 있던 공간을 재활용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공간 창출까지 이뤄낸 셈이다. 시민들을 위한 생활문화 프로그램 공간으로 주로 활용되는 이곳에선 한창 보깅댄스 강좌가 진행되고 있었다. 나머지 탱크들도 제각기 다른 공간으로 탈바꿈해 장소를 더욱 다채롭게 꾸미고 있다. 공연장과 전시관뿐 아니라, 문화비축기지의 역사를 보여주는 이야기관과 탱크 원형을 간직한 공간까지 보존돼, 장소의 과거와 현재 모두를 한껏 체험하고 즐길 수 있다.

 탱크 외부에는 거대한 콘크리트 옹벽이 서 있고 짙은 얼룩이 진 철제가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면 한때 석유가 저장됐음을 알 수 있는 검은 흔적과 붉은색 소화액관, 그리고 당시 석유 기지 운영직원들이 어떻게 일을 했는지 증언한 말들이 군데군데 벽에 붙어 있다. 탱크의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높은 천장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진입로의 지형, 가늘고 긴 파이프 기둥 등 거대한 탱크내부의 모습을 변형 없이 유지해놓은 T4는 공간 내부에 영상·음향장비를 설치해 공연과 전시가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됐는데, 큰 석유탱크 안에서 예술작품을 본다고 생각하면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축구장 22개를 합친 크기(14)와 맞먹는 문화비축기지는 탱크가 차지하는 공간 외에도 넓은 야외 공간이 있다. 야외에선 주말을 맞아 플리마켓 모두의 시장이 진행되고 있어, 매대에 놓인 물건들을 살펴보는 인파로 붐볐다. 이외에도 야외 부지에서 개최되는 음악 콘서트, 영화제 등 다양한 행사들은 관광객의 발길을 문화비축기지로 끌어당긴다. 문화비축기지 문화기획팀 이태원 주무관은 야외광장에서 매주 행사가 열리고 탱크 안에서도 색다른 공연과 전시가 주기적으로 주최된다“20179월 개장하고 나서 지금까지 120만 명 정도의 관람객들이 이곳을 찾았다고 전했다.

 

과거 마포 석유비축기지의 전경
과거 마포 석유비축기지의 전경

통제구역에서 시민의 공간으로

 1급 보안 시설이었던 석유비축기지는 일반인들은 접근할 수 없었지만, 이젠 무료로 누구나 들어와 관람하거나 산책을 하면서 다양하게 이곳을 즐길 수 있다. 견학을 온 학생들부터 한국에 관광 온 외국인들, 뒤편의 산책로를 오르는 노인들까지 남녀노소 문화비축기지를 누리고 있다. 기지를 찾은 마포구 시민 김모 씨는 문화비축기지에서는 항상 다채로운 문화행사들이 열려 즐길 거리도 충분하고, 근처에는 매봉산 산책로도 있어 인근 주민으로서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월드컵경기장 바로 옆 하늘공원과 더불어 문화비축기지로 이어지는 길은 관광객들에게 매력적인 관광코스다. 특히나 거대한 석유탱크 안에서 즐기는 문화체험은 쉽게 경험할 수 없기에 더욱 신선하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이석현(중앙대 실내환경디자인전공) 교수는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들고 그 지역만의 가치가 느껴지는 경관자원을 만드는 게 지역관광 활성화를 위해 중요하다공간 특성이 살아있는 산업시설 재활용 사례인 문화비축기지는 마포구 시민의 문화체험 향유 기회를 증대시키고 관광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200012월 폐쇄된 이후 10년 동안 버려진 땅에 가까웠던 마포석유비축기지는, 이곳을 지속가능한 장소로 탈바꿈시키고자 고민했던 시민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문화공간으로 재생이 가능했다. 산업화 시대를 대표하던 공업시설에서 문화여유를 가득 담은 시민의 공간으로 탄생한 문화비축기지의 사례는 우리나라 대형 도시재생의 모범으로 자리하고 있다. 시민의 노력이 깃든 만큼, 앞으로도 이곳은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원 역할을 계속 수행할 예정이다. 문화기획팀 이태원 주무관은 문화비축기지는 처음부터 수익 창출이 아닌 시민들이 문화를 가까이서 향유하게 하자는 취지로 조성됐다앞으로도 많은 관광객이 비축기지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행사나 프로그램을 손쉽게 즐기도록 꾸준히 공원을 조성하고 보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태형 기자 flash@

사진제공문화비축기지 (옛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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