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겪어보기 전에는 ...
[냉전] 겪어보기 전에는 ...
  • 고대신문
  • 승인 2019.11.2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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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부터 아이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아빠가 된다면 학원은 많이 보내지 말아야겠다고, 자연에서 뛰놀 수 있는 유년기를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공부보단 친구들을 소중히 여겼으면 했다. 책상보단 놀이터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했다. 예전 아빠, 어디가란 프로그램에 나왔던 윤후처럼 예의바르고 따뜻한 아이로 키울 것이라고 굳게 마음먹었었다. 그래서 아내가 임신한 뒤 가장 처음 사서 본 책도 자연과 놀이와 관계를 중시하는 북유럽의 육아 방식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우리나라의 정형적인 교육시스템 아래서 남들과 조금은 다르게, 뭔가 독립적으로 키우고 싶었다.

  출산한 지 30여 일. 여전히 아이 교육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내 눈앞에 아들을 보니 생각이 좀 달라진다. 요즘 뭘 해서 먹고 살든 영어 못하면 고생이다. 대학 때 영어강의 제대로 알아먹지 못해 얼마나 고생했던가. 언어는 조기교육이지. 영어어린이집이나 영어유치원을 꼭 보내야겠다고 다짐한다. 금지옥엽 아들, 행여나 맞고 다니는 것도 걱정이다. 끔찍한 학교폭력 사건도 많다. 태권도는 진부하니 유도나 복싱을 배우게 해야겠다. 직장생활 해보니 메말라가는 감성을 촉촉하게 적실 문화생활도 필수더라. 바이올린 같은 악기는 꼭 하나 하게 해야지. 이러고 보니 보낼 학원이 꽤 많다. 남들과 다르게, 남들 하는 것 안 하고 키우는 게 얼마나 위험한 짓인가. 남들처럼 키우는 게 걱정 없다. 최선이다.

  아이가 생기고 180도 바뀐 생각에 가장 뜨악하는 건 아내다. 결혼 전부터 독립적인 교육관을 주창해온 남편이 아직 말도 못 하는 아이의 사교육을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설레발을 치고 있으니, 당연하다. 이 시점에서 뜬금없이도 입조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떠올린다. 아이 없이 아이 교육을 생각하던 시절, 치맛바람을 휘날리는 극성 학부모들을 속으로 얼마나 욕했던가. 유행하는 교육 방식과 이름난 학원을 알아보던 친구, 혹은 친구 아내들을 얼마나 한심하게 바라봤었나. 만약 그들에게 치맛바람 좀 자제하시고 독창적으로 키워보라고 말했더라면, 지금 나의 생각과 앞으로 휘날릴 치맛바람 못지않은 극성에 그들은 뭐라고 반응했을지. 등짝에 식은땀이 흐를 만하다. 비판과 비난을 머릿속에만 넣어두고 입으로 꺼내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겪어보기 전엔 웬만하면 말을 아껴야 한다.

<Ash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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