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위한 윤리학> 최훈 지음

  어떤 존재가 도덕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도덕적 의무를 가지고 그 존재를 대하여야 한다. <동물을 위한 윤리학>의 저자는 동물 또한 도덕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동물이 도덕적 지위를 가진다는 명제의 핵심 근거는 감응력이다. 동물 또한 인간과 같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고려해야 할만한 특정 수준 이상의 감응력과 유해 수용력이 있는 동물이라면 윤리적으로 인간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해야 한다는 평등의 대원칙은 그 자체만으로 완전하지 않다. 무엇이 같을 때 같게 대우해야 하는지 그 기준은 각자 다르다. 누군가는 머리카락이 있는 존재라면 같은 것을 같도록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 감응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평등하게 대우 받아야 한다는 당위를 설득력 있게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인간 그 자체로 평등하다. 그렇다면 감응력에 대하여도 똑같이 말할 수 있을까? ‘감응력 있는 존재는 감응력 있기 때문에 평등하다.’ 나는 이것이 전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 그 자체로 평등한 보편원칙이 인간의 이성 에서 도출된다면 동물과 인간이 평등한 이유도 감응력에서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을 윤리적으로 대하는 이유는 그가 감응력을 가지지 못했지만 인간이기 때문이다. 감응력을 평등의 기준으로 내세우는 것이 전혀 말도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존재가 감응력이 있다고 하여 평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도덕적 지위의 조건을 인간이 아닌 감응력을 가진 동물로까지 보편적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 변화의 수준은 동물이 의사소통 능력을 갖게 되는 정도이다. 역사적으로 어떤 해방에는 억압된 주체와 사회 간의 의사소통 과정이 있었다. 동물은 의사소통 능력이 없다. 지금은 동물의 도덕적 지위를 주장하는 대리인들이 있을 뿐이다. 동물에게 도덕적 지위를 인정한들 정작 그 주체인 동물은 그 사실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을 동물 그 자체로의 도덕적 지위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은 도덕적 지위를 수여하는 인간의 시혜적인 시선일 뿐이다.

  동물의 도덕적 지위를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사회의 가능성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서술하였지만 미래사회의 동물해방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은 흥미롭다. 패러다임 안에서는 바깥의 세상을 전혀 상상할 수 없다. 변화의 시발점은 이 책의 저자와 같은 패러다임 바깥을 보려는 작은 움직임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노예의 해방을 당연시 여기는 것처럼 300년 후의 우리도 동물의 해방을 당연시 여기는 사회에 살고 있지는 않을까?

백송이(미디어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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