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넉 달 동안 가요계가 무척 시끄러웠다.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X 101> 마지막 회가 방송된 719일 많은 시청자가 의심을 품었다. 몇몇 최종 후보자들의 표차가 똑같은 수로 나는 점이 영 수상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된 의혹의 목소리가 기사화됐고, 경찰은 엠넷과 데뷔 팀으로 발탁된 멤버들이 속한 기획사들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수사 결과 제작진이 문자 투표를 조작한 것이 사실로 밝혀졌다. 프로그램을 제작한 안준영, 김용범 PD는 결국 이달 초 사기 및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됐다.

  구속된 프로듀서들은 경합을 벌이기 전부터 이미 최종 후보 스무 명을 내정해 놓고 있었음을 시인했다. 시청자들의 문자 투표는 애초에 아무 효력이 없었던 것이다. 진행자의 투표 독려는 사기극을 흐릿하게 만드는 연막, 거짓 쇼에 활기를 주입하는 약삭빠른 영업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프로듀스 X 101>국민 프로듀서라는 그럴싸한 명의를 부여해 수많은 시청자를 농락했다.

  분노의 불똥은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보이 그룹 엑스원한테로 튀었다. 시청자들의 투표가 바르게 반영된 결과가 아니기에 해체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또한 안준영 PD가 지난해 방송된 <프로듀스 48>에서도 순위 조작이 있었음을 인정함에 따라 이 프로그램으로 탄생한 걸 그룹 아이즈원도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지탄이 확산되고 있다. 그렇게 염원한 가수 데뷔의 꿈을 이뤄서 기쁠 새싹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이 그룹들의 해산이 대중의 원성을 가라앉힐 바람직한 결정일 수 있다. 하지만 작금의 오점을 말끔히 무마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미 발생한 역사를 지울 수는 없다. 이번 사건은 우리 대중음악, 대중문화의 갑갑한 단면을 확실하게 부각한 사례로 남게 됐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아이돌 가수들이 케이팝이라는 이름으로 나라 바깥에서 약진을 이어 가고 있다. 하나의 아이돌 그룹을 만드는 데에는 상당한 비용과 오랜 시간이 들지만 제대로 뜨기만 하면 큰돈을 벌어 준다. 그야말로 황금 알을 낳는 거위다. 때문에 많은 연예기획사가 아이돌 그룹 제작에 열을 올린다. 노래와 춤에 재능이 있는 청춘들은 그 화려한 세계를 동경해 아이돌 가수를 꿈꾼다.

  좋아하는 가수를 위해 무한정 헌신하는 열성팬들은 아이돌 산업의 확장을 돕는 든든한 후원자다. MBC <PD수첩>1015일 내보낸 ‘CJ와 가짜 오디션편에서 한 시청자는 가족과 지인 약 200명에게 부탁해 문자 투표를 하게 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주변 사람을 동원해 응원하는 연습생에게 힘을 보태는 이가 허다하다. 아이디를 불법으로 거래하는 등 여러 개를 확보해 온라인 투표에 참여 하는 경우도 잦다.

  방송에 사용될 재료가 줄지어 있고, 적극적으로 봐 줄 시청자도 마련됐으니 오디션 프로그램은 손쉽게 성공을 거두고 활개를 친다. 흥행 실적이 쌓이면서 <프로듀스 101> 시리즈는 막대한 힘을 쥐게 됐다. 기획사는 자기네 연습생을 밀어 달라며 PD에게 향응을 제공하고, 데뷔가 일생의 목표인 연습생들은 경연에 쓰일 노래를 제공받은 사실을 숨기며 부정에 동조했다. 이익이 맞는 이들이 계획한 수작에 순진한 시청자와 전말을 모르는 연습생들만 놀아났다.

  권력에 도취된 PD의 우둔한 욕심이 까발려지면서 일부 대중은 아이돌 가수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불신을 품게 됐다. 그럼에도 이런 방송은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경연 과정에서 불공정한 방법도 알게 모르게 반복될 듯하다. 아이돌에 대한 비이성적인 쏠림이 여전히 사회 전반에 우세하기 때문이다.

한동윤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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