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 시절을 힘들다고 기억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길지 않은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보냈던 그 시절에 대해 세부적인 감상은 다를 수 있어도 고생이라는 단어를 빼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모의고사 점수를 단 몇 점 올리기 위해 수백 개의 문제를 풀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졸린데도 수능 시간표와 생활 리듬을 맞추겠다고 쉬는 시간에도 억지로 눈을 떴다. 합격자 발표 날에 연달아 불합격이라는 글자를 보았을 때는 한숨밖엔 나오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모두 고된 나날이었다. 대학 입시라는 건 내게 그랬다.

  그렇게 힘들어하면서도 입시에 공을 들였던 이유는, 그때의 나는 대학이야말로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학만 제대로 간다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리라고 믿었다. 공부를 하다 지칠 때면, 다이어리에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을 적어놓곤 했다. 그 목록에는 입시가 끝나면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정말 사소한 일들까지도 대입 이후로 미뤄졌다. 그만큼 대학이라는 건 당시의 내게 세상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커다란 존재였다.

  이제 와서 대학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내지는 오히려 그때가 좋을 때고 나중엔 더 힘들다는둥 훈계조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런 말들에 대한 가치 판단과는 별개로, 대입이 수험생들에게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부담인 건 사실이다. 어른이 된 내가 당시를 돌이켜보았을 때 그게 별일 아니라고 느껴진다고 해도 성적표 위 숫자 하나하나에 울고 웃었던 그때의 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끔찍한 사실은, 나의 수험생활이 끝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차라리 대학입시 생각만 하는 게 더 낫겠다 싶을 정도로 다채로운 걱정들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거다. 이런 식이라면 나는 고뇌와 불안으로부터 평생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하다. 하나의 문제를 겨우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문제가 성큼 다가와 있다. 10년치에 이르는 수능 기출 문제를 풀던 예전보다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다. 어쩌면 삶은 내게 앞으로 점점 더 무거운 숙제들을 선물할지도 모른다. 그런 숙제들을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는 아주 오랫동안 의문으로 남게 될 것 같다. 아니, 인생의 끝에 이르러도 알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진다. 다만 내가 내 인생 최초의 중대 고난이었던 대입에서 배운 것처럼, 진득하게 앉아 간절한 마음으로 살아보려고 한다. 그러면 못해도 하나 정도는 잘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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