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그녀'의 귀기울임이 다가와 사랑이 되었다.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빅 히어로>
치료용 로봇 베이맥스와 소년 히로가 전하는 훈훈한 우정.
달려와 안기는 히로를 따스하게 안아주는 베이맥스의 푸근함이 드러난다.

  십수 년 전, 공상과학영화의 단골 소재는 적의에 가득 차 인간세계를 정복하는 반란을 꿈꾸던 기계로봇이었다. 현실적 상상에 로봇이 단골로 등장하는 것은 지금도 변함없지만, 인간이 그리는 로봇과의 관계 양상은 많이 변한 듯하다. 로봇들은 때로는 마시멜로 같은 몸으로 나를 위로해주고 포근히 안아주는 친구로 (영화 <빅 히어로>), 때로는 공허한 일상에 나타난 사랑하는 나의 그녀로 (영화 <그녀>) 다가온다. 2019년 현재, 인공감정의 현주소는 어디며, 이것이 나아갈 방향은 어느 쪽일까.

 

인공물에 감정을 요구하다

  인공물에 지능을 이식하는 것을 중심으로 진행됐던 연구개발은, 현재 감정을 불어넣으려는 활발한 시도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 27일 세계적 IT 기업 아마존(Amazon)은 인공지능 음성인식 비서 알렉사(Alexa)’가 사용자 감정을 판단해 기쁨’, ‘실망’, ‘단호함등 여섯 가지 감정을 담은 목소리로 답변하도록 프로그램을 개선한다고 밝혔다.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그리고 기계학습 기술의 발전으로 인공감정기술이 정교함을 모색할 기반을 갖게 된 결과다.

  이는 인간과의 대강적인 소통을 구현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이 우리의 일상에 자리잡아가는 상황에서, 더 자연스럽고 직관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대상에 감정적 특징을 요구하는 인간의 필요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이동욱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의사소통 상황의 신뢰도나 의미는 대화의 실제적 내용뿐 아니라 감정과 같은 비언어적인 표현에서도 얻을 수 있다감정이 실리지 않은 자동응답기와 영화 ‘Her’의 인공지능 운영체계인 사만다의 목소리 중 인간이 어떤 선택지를 선호할지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일정 수준의 정교함으로 구현되는 감정적 특징이 인간-기계 상호작용의 질을 향상할 가능성이 제시되며, 인공감정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도 활발히 진행될 전망이다. 이종관(성균관대 철학과) 교수는 이성의 시대에 종말을 고한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인간의 감정이 무엇인가에 대한 연구는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했다감성과 첨단과학을 결합한 감성공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탄생한 만큼, 인간의 감성이 촉발되는 원리를 파악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는 시도는 앞으로도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감정의 내면성, 신체성 결여돼 인간수준의 감정 구현엔 한계···

 

감정과 표현간 인과관계 규명 필요해

  인공물에 감정이라는 신경생물학적 요소를 주입하려는 대담한 시도는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인공감정의 지향성은 철학자 존 설(John Searle)이 도입한 강한 인공지능(strong AI)’약한 인공지능(weak AI)’ 개념과 관련해 살펴볼 수 있다. 강한 인공지능은 인간과 동일한 신경감정체계를 갖고 같은 원리로 감정을 느끼는 기계를 만드는 것을 목표하는 반면, 약한 인공지능은 인간을 모방해 감정을 처리하는 것처럼 보이도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 인공감정 모델은 약 한 인공지능의 토대 위에서 기계학습과 빅데이터 기술을 융합한 감성컴퓨팅(Affective Computing)’ 기술을 통해 감정인식부, 감정처리부, 감정표현부로 나뉘어 개발되고 있다. 동영상, 음성, 생체신호 기반으로 구성되는 감정인식부는 카메라, 마이크, 터치센서 등의 다양한 센서로부터 인간의 표정이나 제스쳐, 말의 내용과 말투를 받아들여 감정을 인식하고 분류한다. 감정처리부는 이후 판단한 감정을 수학적 모델의 변수인 파라미터(parameter)로 저장한 후, 인간과 유사한 반응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심리학 모델을 통해 연산해 감정과 반응의 교차점을 찾는다. 감정표현부는 감정처리부에서 연산이 이뤄진 후 내부 상태가 바뀌면 새로운 상태의 감정을 외부로 표현하는 부분으로, 인간의 목소리, 표정, 몸짓과 눈 깜빡임 등 자율반응 행동을 모방해 이뤄진다.

  그러나 데이터 수집의 핵심이자 인공감정 모델의 시작인 감정인식 기술은 인간의 깊은 내면의 감정을 파악하는 것이 아닌, 겉으로 드러난 특징에서 감정을 분류하는 정도의 표면적 수준에 머무른다는 한계가 있다. 이원형(한동대 전산전자공학부) 교수는 표정 인식의 경우 커뮤니케이션 학자 폴 에크만(Paul Ekman)이 제시한 기쁨, 슬픔, 화남 등 인간의 여섯 가지 보편적 표정을 기반으로 개발이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표정이나 몸짓이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지 정확히 파악하려면 행위자로부터 직접 확인 받는 과정이 필요해 절대적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소속된 문화와 개인의 성격별로도 표현방식에 차이가 있어 장기간 한 사람의 행동 양식과 언어로 감정을 알아내는 연구도 진행되지만, 이 역시 데이터 수집이 어려워 괄목할 진척은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또한, 생체신호와 행동 등의 표현과 감정 사이 관계에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이론적 전제도 부재하다. 맥박이나 뇌파 등 생체신호기반 감정인식의 경우 비교적 높은 정밀도를 보이지만, 생체신호와 감정간 인과관계 여부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박충식(U1대 스마트IT학과) 교수는 감정이 표현의 원인이 된다는 이론이 일반적이긴 하지만, ‘흔들다리와 평지 비교 실험처럼, 신체 반응이 선행된 후 감정을 느낀다고 보는 반대 이론도 무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조성호(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 또한 생체신호와 행동을 감정의 결과로 보고 인공감정 모델이 개발되고 있지만, 이것이 인과관계인지 단순 상관관계인지는 엄연히 다른 문제라며 이후 충분한 양의 데이터를 통해 경향성을 면밀하게 확인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간 감정 먼저 이해돼야

  이렇듯 인공감정 모델은 심리학, 신경과학, 인문학 분야의 주요 감정 연구결과에 근거해 개발되고 있지만, 인간 감정의 속성에 대한 논의가 여전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인공감정 분야 역시 이 흐름을 지속적으로 주시하고 파악해야 하는 상황이다. 박충식 교수는 인공감정은 고도의 공학 기술이기 이전에, 결국 인간과 유기체 감정에 대한 선이해와 본질적 탐구가 가장 중요한 분야라고 설명했다.

  감정은 일반적으로 생각, 느낌, 행동 반응, 즐거움과 불편한 정도와 관련된 정신적인 상태를 말하며, 촉발 과정에서 유기체의 신체성(physicality)’이 강조된다.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데카르트로 이어지는 이성 중심주의, 흄이 주창한 감정 중심주의의 서양철학 역시 이성과 감정의 관계에 대한 해석 차이에도 불구하고 감정이 발현되는 원인에 대해서는 같은 입장을 견지한다. 서양철학은 공통적으로 감정은 인간이 신체를 갖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며, 이를 곧 신체를 통한 세계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본다. 현재 심리학계의 주류로 떠오른 감정 이론 역시 감정을 신체와 뇌 사이의 소통 장애의 일종으로 본다. 현재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미래를 예측해 항상성 유지를 최우선 목표로 하는 뇌의 예측치와 신체 상태간의 차이가 특정 수준을 넘어설 경우, 상황이 비로소 의식적으로 지각되며 인간이 감정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김학진(문과대 심리학과) 교수는 어떤 개체가 감정이 있다고 판단하는 기준은 항상성을 유지해야 하는 신체, 그리고 신체의 항상성 유지를 위해 능동적으로 작동하는 와 같은 기제를 갖췄는지 여부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체성은 인공감정 기술을 고도화할 핵심 조건으로 제시된다. 이영의(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는 인간의 감정 구조와 상태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인간 감정을 모의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지만, 기계가 실제로 인간과 같은 감정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의 몸을 가져야 한다기계는 인간의 신체와 전적으로 다른 물리적 기반을 갖고 있기에 인간의 감정을 소유하긴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간의 감정을 모방하는 데 머무는 약한 인공지능을 지향하는 현시점에서도 외부자극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신체와도 같은 정밀한 센서의 중요성이 우선적으로 강조된다. 박충식 교수는 인간은 손을 잡는 방식의 차이에 따라서도 다른 감정을 전달하고 느낀다온몸이 피부라는 예민한 센서로 덮여있는 인간 수준의 감각 기관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간과 동일한 감정이 요구될까

  한편, 인간과 같은 수준의 감정을 가진 인공지능 기술이 결국 상용화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이 우세하다. 전문가들은 인공감정의 성취를 위한 기술적인 현실성보다도 기술 개발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인간을 위한 수단적 목적이 큰 현재의 인공지능에 인간과 같은 수준의 감정까지 부여할 필요성이 적다는 것이다. 이동욱 연구원은 목적성이 뚜렷한 기술의 특성과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인간의 생활 양상을 고려했을 때, 인간처럼 스스로 느끼고 자각하는 인공지능에 대한 수요가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전했다. 이영의 교수 역시 인간 수준의 감정을 구현하는 기술은 기술적 과제뿐만 아니라 상당한 윤리적 과제를 안고 있다우선 인간의 감정을 모의하고 처리할 수 있는 정도의 소셜 로봇의 단계에서 출발해 차차 진화해나가는 것이 안전한 방향성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인공감정과 관련된 작금의 논의는 어떠한 시사점을 던지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기술의 가능성과 개발의 필요를 타진하기 전에 기존 인간중심적 감정 개념의 확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유기체 내의 본능적인 기제뿐 아니라, 외적으로 표출되는 객관적 표현의 과정까지 감정의 범주에 포함하는 기능주의가 대두되는 것이 동일한 맥락이다. 신상규(이화여대 인문과학원) 교수는 기능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주관적인 느낌이 없더라도 외부와 상호작용만 가능하다면 감정의 논의에 포함될 수 있다인공감정 기술이 더 정교해지고 상용화된다면, 개체의 감정 표현과 주변 환경의 반응을 포함한 상호작용 메커니즘 전체를 감정의 분석단위로 확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나아가 인공감정의 고도화를 가져올 기계학습과 관련해 후천적 학습으로 발전하는 종류의 감정을 주목해볼 수 있다. 변순용(서울교육대 윤리학과) 교수는 어떤 의미에선 인간이 느끼는 일부 감정도 사회문화적 교육을 통해 학습되고 프로그램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인공감정이 가짜인지 준감정인지는 논의가 필요하지만, 이러한 사회화되고 문화화된 측면의 감정을 고려한다면 기계학습으로 실현한 감정과 인간 감정과의 유사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예정 기자 breeze@

사진영화 <그녀>, <빅 히어로> 공식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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