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지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지음)

 우리는 어릴 적부터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을 구분하고, 오직 순수문학만이 가치 있는 문학으로서 취급받는 사회 속에서 자라왔다. 사회는 우리에게 흥미 위주의 소설은 무가치한 소비 문학에 지나지 않으며, 당대의 시대상이나 인간 본연의 조건과 같은 가치 있는 것들을 그려낸 순수문학만이 향유할 만한 문학이라고 가르쳐왔다. 그러나 정말로 흥미 위주의 소설은 무가치한가? 혹은, 정말로 장르 문학에는 가치 있는 것들이 담겨있지 않은가?

 SF&F 문학의 거장 어슐러 K 르 귄은, 자신의 에세이를 통해 소설의 목적은 사회 속의 개인에 초점을 맞춰 주체의 번민과 윤리를 그림으로써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SF, 주체가 아닌 객체사회를 그리는 소설들 속에서, 그 광활한 상상력을 이용해 아주 연약하고 영웅적인 브라운 부인의 모습을 꿋꿋하게 그려내는 장르라고 설명한다.

 지금 한국의 문단은 르 귄의, 혹은 그보다 앞서 브라운 부인에 집중할 것을 요청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관에 가까운 작품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적 조건들에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개인의 고뇌와 번민에 집중하는 문학들이 많은 독자에게 인기를 얻고 있고, 공감을 통한 상호 이해의 장이 형성되어가고 있다.

 그 속에서도 김초엽 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특별하다. 단편집 속의 작품들은 SF적 세계를 그리고 있고, 대부분의 작품은 작품 속의 개인들에 집중해서 그려지고 있다. 예를 들어 외계 지성체 루이와 첫 조우자인 할머니(‘스펙트럼’), 오지 않는 우주선을 기다리는 할머니 안나(‘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서버에 업로드된 어머니의 마인드를 잃어버린 지민(‘관내분실’), 그리고 우주 영웅이었던 이모를 둔 가윤(‘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까지, 인물보다 사회 자체에 초점이 맞춰진 작품은 거의 없다.

 작품들은 분명 SF적 세계를 통해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타자와의 이해, 인간의 윤리성, 기술 진보에 의한 소외, 트랜스 휴머니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지만, 이러한 객체들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가고 있는 주체로서의 인물, 그리고 이를 통한 어떠한 희망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 희망은 인간이, 소설가가 서로를 이해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이고, 맞부딪히는 존재들이 끝내 함께살아가리라는 희망이다.

 SF 소설, 혹은 지금의 한국 문학이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어쩌면 이 책이 낯설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초엽 작가의 SF는 복잡한 수준의 과학적 이해가 필요하지도 않고, 한국 문학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그리는 것처럼 어둡고 음울하지도 않다. 오히려 단행본의 파스텔톤 표지처럼, 이 소설집은 밝고 따스하다. 우울하고 슬픈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지금 우리의 현실 속에서, 김초엽 작가가 선물하는 파스텔빛 희망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

 

신성종(문과대 일문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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