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덕미국변호사        법무법인 천고
임병덕
미국변호사
법무법인 천고

 “70조 은행이 1조 7000억에 날라갔다”, “대한민국을 뒤흔들 금융범죄 실화극”,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블랙 머니>의 예고편에 나오는 문구이다. 이에 여론은 들끓고,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참여연대’ 등은 11월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론스타 먹튀 사건 진실-책임 규명해야”한다고 주창했다.

 <블랙 머니>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픽션이라는 면책성 부인을 하는 화면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그러나 ‘은행의 자산’이란 대출로 나가 있는 고객의 예금이 대부분이라는 설명은 부족하여, 다수 일반인들은 68조 3000억 원이나 되는 돈을 론스타 등 나쁜 인간들이 단돈 1조 7000억 원만 놓고 먹고 튀었다며 흥분한다. 또한 주인공들을 제외한 등장인물들이 론스타 사태에 관련되었던 실존인물에 매우 부합하여 누구 얘기하는 것인지가 뻔할 정도다. 2013년 <천안함 프로젝트>의 백승우 감독이 “영화는 영화로 봐 달라”고 했던 말이 무색할 정도다. 그러면 <블랙 머니>는 기득권을 상대로 한 찌라시 음모론 인가, 아니면 심각한 현실폭로 인가?

 그렇지만 이 질문은 일개 영화에 국한될 뿐이다. 정작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우리가 냉정하게 론스타 사태에서 얻어야 할 깨달음이 무엇일까? 국내와 국외로 구분해서 살펴보도록 한다.

 먼저, 론스타가 ICSID에 2012년 제소한 5조 단위의 ISD 중재소송을 살펴보자. ISD란 해외 투자자가 투자대상 국가의 부당한 법령이나 정책으로 피해를 볼 경우 상대 정부로부터 손해보상을 받도록 한 국제중재제도이다. 론스타의 주장은 여론을 의식한 정부가 외환은행매각을 6년 넘게 집요하게 고의로 지연시켜 수차례 매매계약이 파기되었고, 결국 외환은행을 인수한 하나은행과의 계약시에는 아예 매매대금을 낮추기 전에는 허락할 수 없다며 압박하여서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책임소재는 법리보다 사실관계에 의하여 결정될 가능성이 짙은데, 문제는 론스타가 승소할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여론을 업은 정부인사들이 국민정서를 운운하며 언론자료까지 배포해 가면서 공적 증빙자료들을 남겨줬기 때문이다. 

 반면 <블랙 머니>의 골자는 이렇다: (a) 모피아는 외국 사모펀드와 짜고 (b) 자기들 돈을 세탁 하여 그 펀드에 넣고 (c) 그 펀드가 국내 은행을 헐값에 매수할 수 있도록 자기자본비율을 은행직원을 시켜 조작하고, (d) 증거인멸을 위해 그 직원들을 살해 했으며, (e) 몇 년 후 그 은행이 회생하여 주가가 상승하자 각종 음모를 통해 매각을 승인했고, (f) 펀드는 수조의 차익을 보고 먹튀 했으며, (g) 그 차익의 대부분은 모피아 몫이었다.  

 먼저 국내 이슈들을 살펴본다. 위 요소 중 (d)는 영화스러운 픽션일 뿐이나, (a), (b), (c), (e), (g)는 만약 사실이라면 심각한 국정농단이다. 세월호 참사, 조국 사건에 버금가는 스캔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제작진과 감독이 등장인물을 실존 인물로 쉽게 연상할 수 있도록 영화를 만들었고 ‘금융범죄 실화극’ 이라고도 했으니, 모종의 증거를 보유하고 있는 듯하다. 만약 그렇다면 수년 전 대법원에서 모두 종료된 건들이라도 법절차적으로 가능한 한 재수사를 해볼 만하다.

 이제 국제적인 이슈를 살펴보면, (a)“모피아는 사모펀드와 짜고” 와 (f)“먹튀 했다” 이다. 우선, “사모펀드와 짜고”가 사실이라면 상황은 급하다. 그런 증빙자료가 있다면 ISD에서 한국정부가 승소할 확률이 급거 높아진다. 론스타가 애초 ICSID에 제소할 법적지위를 상실할 수 있고, 한국 정부의 외환은행매각을 지연시킬 권한이 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제작자들은 시급히 정부를 대변하는 로펌에 증빙자료들을 제출해야 한다. 시간이 없다. 2012년 제소되었고 2015년경 웬만한 변론이 이루어진 후,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던 결과가 4년이 넘도록 나오지 않고 있다. 이 점도 이상하지만, 여하튼 서둘러야 한다.

 그러나 그런 증빙자료가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정서법을 돌이켜 봐야한다. ‘먹튀’는 한국의 토종정서법 개념이다. 문제는 이것이 국제시장에서 통용되는 가치관·법리와는 동 떨어진 희귀개념이라는 것이다. 국제시장에서는 ‘돈을 너무 빨리 많이 버는 것은 나쁘다’라는 개념이 없다. 금융기관도 이익을 추구하는 사업체이지, 공익기관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외환은행을 헐값에 샀다’? 그러나, 헐값에 내 놓은 것은 바로 우리다. ‘사모펀드는 악덕투기자본이다’? 론스타가 피도 눈물도 없는 펀드라고 해도, 적법하게 행동했다 치면, 번 돈을 ‘사모펀드기 때문에’ 회수하는 것은 약탈이다. ‘한국에 왔으니 한국 정서와 법을 따라야지’? 이것도 힘들다. 한국은 자진해서 해외자본유치를 위해 국내법에 상위하는 국제 투자·조세 협정들을 맺었다. 특히 ‘외국인이 국내에서 번 돈을 가져 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개념은 큰 거부감을 유발한다.

 이렇듯 우리의 정서법은 국제시장의 문화와 괴리가 매우 커서, 한국을 고립시킬 여지가 충분하다. 이제 대한민국은 경제규모로 세계 12위권의 나라다. 더구나,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FTA를 체결하였으며, 다수의 투자·조세 협정을 체결해 왔다. 즉, 한국에 투자해 달라고 적극 호소한 것이다. 그렇다면 응당 국가가 외국인투자자들을 상대로 정서법에 휘둘린 행보 대신 합리적이고 일관된 행보를 보여야,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과 신뢰도를 구축할 것이다. 그러려면, ‘먹튀’같은 정서법 개념을 감성적으로 외칠 것이 아니라, 국가가 금융기관의 주주를 넘어서 그외 사회에 산재한 이해당사자(stakeholder)까지도 보호하는 정당한 법령 및 제도로 서둘러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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