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4 16:41 (수)
[냉전] 우물의 크기
[냉전] 우물의 크기
  • 고대신문
  • 승인 2019.12.01 2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A. 기왕 양 팔에 용으로 문신했으니 어쩔 수 없네. 우리 졸업하기 전까지 색칠은 하지 말자. 나중에 너 분명 후회할거야.

학생 A: 글쎄요. 전 후회 안 해요. 이제 가볼게요.

: 그래. 담배피지 말고 곧장 교실로 올라가.

 내가 교사가 되기 전까진 학교에서 이런 대화를 하게 될 줄 몰랐다. 교육학 책에는 이런 상황을 가르쳐 주지 않았으니깐. 나는 모르는 것이 많았다. 특성화고 교사로서 매년 고등학교 입시철이 되면 중학교를 돌며 학교 홍보를 다녀야 됨을 몰랐다. 우리 학교에 학생 좀 보내주세요. 출산율 저하로 학생 수 자체가 줄다보니 학생 한 명 한 명이 학과의 존폐를 결정할 만큼 절실하다. 중학교 교무실에 비타500 박스를 들고 갈 때 마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스스로 자문하곤 했다.

 교사가 되기 전에는 몰랐다. 교사는 가르치는 일뿐만 아니라 행정업무 처리, 학생 관리, 학부모 민원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철마다 내려오는 국회의원 요구 자료를 처리해야 하며 학교기숙사 소파를 사기 위해 업체와 견적을 뽑기도 해야 한다. 영어만 잘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 밖의 것도 잘해야 교사로서 인정을 받더라.

 처음 특성화고인 이 학교에 발령을 받았을 때는 학교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학교의 이미지와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학교의 상황에 적응하면서 이내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세상엔 수능과 대학진학이 전부인 학생들만 있는 게 아닌데. 제발 중졸은 안 된다며 엄마가 사정사정해서 졸업장만 따려고 학교에 와주는학생들도 있다. 밤새 퀵 아르바이트를 하고 피곤해서 교실에서 하루 종일 잠만 자는 학생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학교를 잣대로 학교를 바라본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수능이 전부인줄 알았던 내가 툭하면 자퇴하겠다는 학생들을 보면서 우물 안 개구리로 살지 않았나 반성하게 된다. 직접 겪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괴롭힘 당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문신으로라도 세 보이고 싶었던 학생을 마주하는 순간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과 내 우물의 크기도 조금씩 커져가고 있었다.

 그러니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에는 함부로 말하지 마시라. 나만의 잣대로만 세상을 보기에는 다양한 상황과 사람들이 넘쳐난다. 영어문법을 논하기 전에 문신의 색깔에 대해서 논하고 비타 500 들고 홍보 다닐 줄은 나도 몰랐으니깐.

<BONA>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