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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랭 루즈에 앉아 인간의 욕망을 탐구하다
물랭 루즈에 앉아 인간의 욕망을 탐구하다
  • 김영현 기자
  • 승인 2020.01.25 2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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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툴루즈 로트렉展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 1880~1914 ), 정치적 격동기를 거친 파리에 예술의 찬란함이 깃든 시기. 1889년 파리는 만국박람회를 맞아 에펠탑을 세상에 내놓고, 몽마르트르 언덕 아래 댄스홀 <물랭 루즈>를 열었다. 그 풍요로운 시대 속에 작은 거인 툴루즈-로트렉이 있었다.

 앙리 마리 레이몽 드 툴루즈-로트렉-몽파(Henri Marie Raymond de Toulouse-Lautrec-Monfa). 긴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유서 깊은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귀족 사이 빈번했던 근친혼의 영향으로 골격계 질환인 농축이골증을 안고 살았다. 성장기를 거치며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고, 골절 사고 이후엔 평생 지팡이를 짚고 살았다.

 장애의 고통을 그림으로 풀어낸 툴루즈-로트렉, 37살의 짧은 생애 동안 5000여 점의 작품을 남긴 그가 올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2007년부터 유럽과 미국 등지 13개의 미술관을 거쳐 순회 전시 중인 툴루즈-로트렉-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53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관람객을 만난다.

 

1. 물랭 루즈, 라굴뤼(1891)검은 실루엣의 손님들에게 둘러싸인 라 굴뤼와 발랑탱은 1891년 당시 물랭 루즈의 스타 댄서다. 회색과 녹색이 섞인 발랑탱의 반신 실루엣은 단조로운 색채와 양식화된 곡선으로 밋밋해 보이는 동시에 오히려 그를 강조하는 효과를 준다. 허공에 떠다니는 노란색 물체는 가스등이 밤새 비추는 물랭 루즈 내부 공간을 연상시킨다.
1. 물랭 루즈, 라굴뤼(1891)
검은 실루엣의 손님들에게 둘러싸인 라 굴뤼와 발랑탱은 1891년 당시 물랭 루즈의 스타 댄서다. 회색과 녹색이 섞인 발랑탱의 반신 실루엣은 단조로운 색채와 양식화된 곡선으로 밋밋해 보이는 동시에 오히려 그를 강조하는 효과를 준다. 허공에 떠다니는 노란색 물체는 가스등이 밤새 비추는 물랭 루즈 내부 공간을 연상시킨다.

캉캉 춤을 추는 포스터

 물랭 루즈는 개장과 동시에 파리의 명소가 됐다. 거대한 붉은 풍차 아래 화려한 댄서들이 무대에 올랐고, 그들에게 매혹된 당대 유명 인사들이 모여들었다. 툴루즈-로트렉도 매일 밤 물랭 루즈를 찾았다. 자유분방한 환락 속에서 그가 눈에 담은 물랭 루즈의 인물들이 곧 예술적 영감이 됐다. 변종필 제주현대미술관 관장은 자유로운 몽마르트르에서 툴루즈-로트렉이 귀족문화와 다른 편안함을 느꼈다고 본다특히 사고로 성장이 멈춘 후 겪은 심리적, 육체적 불행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툴루즈-로트렉을 세상에 알린 포스터도 무대 바로 앞자리를 지정석으로 받는 대가로 그려준 물랭 루즈, 라 굴뤼’(사진 1). 캉캉 댄스계 스타였던 라 굴뤼와 남성 댄서 발랑탱이 춤추고 있는 장면을 그린 물랭 루즈, 라 굴뤼가 대중의 뜨거운 호응을 얻자, 다른 카바레에서도 툴루즈-로트렉에게 포스터 제작을 의뢰하기 시작했다. 제인 아브릴(Jane Avril), 아리스티드 브리앙(Aristide Bruant), 메이 벨포르(May Belfort), 이베트 길베르(Yvette Guilbert)(사진 2~4). 그가 포스터에 그린 사람들은 한순간에 스타가 됐다. 빨간 목도리, 품에 안긴 고양이, 긴 검은색 장갑 등 툴루즈-토르렉은 인물마다 캐릭터를 부여하고 역동적인 동작을 입혔다. 먼 곳에서 봐도 눈에 띄는 포스터 속 그들의 모습은 이번 전시회에서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2. 제인 아브릴, 자댕 드 파리(1895)자댕 드 파리 무대에서 한쪽 다리를 높게 든 채 캉캉 춤을 추는 제인 아브릴을 그린 포스터다. 오케스트라 악사의 콘트라베이스와 제인 아브릴의 두 다리가 대각선 구도의 틀을 이뤘다. 일본 우키요에 판화의 영향이 반영된 것이다. 마룻바닥의 직선과 드레스의 곡선이 조화를 이루고 표현의 과장과 생략이 포스터 메시지의 효과적인 전달을 도왔다.
2. 제인 아브릴, 자댕 드 파리(1895)
자댕 드 파리 무대에서 한쪽 다리를 높게 든 채 캉캉 춤을 추는 제인 아브릴을 그린 포스터다. 오케스트라 악사의 콘트라베이스와 제인 아브릴의 두 다리가 대각선 구도의 틀을 이뤘다. 일본 우키요에 판화의 영향이 반영된 것이다. 마룻바닥의 직선과 드레스의 곡선이 조화를 이루고 표현의 과장과 생략이 포스터 메시지의 효과적인 전달을 도왔다.
3. 앰배서더 카바레의 아리스티드 브뤼앙(1892)샹송 가수 아리스티드 브뤼앙과 앰배서더 카바레를 홍보하는 포스터다. 적색, 황색, 청색의 세 가지 원색을 단조롭게 병치했다. 핵심적인 색만으로 주의를 끌어야 하는 포스터의 장르적 특성을 살린 것이다. 상단의 앰배서더 문구를 브뤼앙의 모자가 일부 가린 것은 시선을 유도하는 동시에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로트렉의 개성을 드러낸다.
3. 앰배서더 카바레의 아리스티드 브뤼앙(1892)
샹송 가수 아리스티드 브뤼앙과 앰배서더 카바레를 홍보하는 포스터다. 적색, 황색, 청색의 세 가지 원색을 단조롭게 병치했다. 핵심적인 색만으로 주의를 끌어야 하는 포스터의 장르적 특성을 살린 것이다. 상단의 앰배서더 문구를 브뤼앙의 모자가 일부 가린 것은 시선을 유도하는 동시에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로트렉의 개성을 드러낸다.

 툴루즈-로트렉의 포스터 작품에서 화려한 대상만큼이나 돋보이는 특징은 구도의 파격성이다.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꼽히는 그는 서양미술의 고전 원칙이었던 원근법과 삼각의 안정적 구도를 과감하게 무시하고 파괴했다. 대신 대각선을 즐겨 사용했으며 단순한 보색 병치를 통해 원근감을 없앴다. 김희영(국민대 미술학부) 교수는 19세기 말 유럽에 일본 우키요에 판화가 유행하며 후기인상주의 회화에 큰 영향을 줬다우키요에 판화의 대담한 구성을 접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은 당시 화가들이 이전 시대에 불가능했던 시도를 과감하게 그림에 옮겼다고 설명했다.

4. 메이 벨포르(1895)무대에 오를 때마다 고양이를 안고 나오던 아일랜드 출신 가수 메이 벨포르를 위한 포스터다. 메이 벨포르는 의도적으로 어린 소녀를 연상하는 모습으로 치장하고 아이의 목소리로 노래했다. 공연을 보고 영감을 얻은 로트렉은 그녀를 위한 포스터 수십 점과 함께 그녀의 동성 연인 메이 밀턴을 그린 포스터를 제작했다.
4. 메이 벨포르(1895)
무대에 오를 때마다 고양이를 안고 나오던 아일랜드 출신 가수 메이 벨포르를 위한 포스터다. 메이 벨포르는 의도적으로 어린 소녀를 연상하는 모습으로 치장하고 아이의 목소리로 노래했다. 공연을 보고 영감을 얻은 로트렉은 그녀를 위한 포스터 수십 점과 함께 그녀의 동성 연인 메이 밀턴을 그린 포스터를 제작했다.

 

조명 꺼진 뒷골목 안으로

 툴루즈-로트렉이 눈에 담은 것은 무대 위 댄서들의 화려한 모습만이 아니었다. 몽마르트르 유곽에 머물며 진한 화장을 닦아낸 채 집으로 돌아가는 여인들의 뒷모습을, 카드놀이를 즐기거나 손님을 기다리며 화장하는 그녀들의 소소한 일상을 지켜보고 그렸다. 변종필 관장은 몽마르트르 여인들의 모습은 즐거움과 슬픔, 즉 희극과 비극을 동시에 지닌 인간 삶의 한 단면이라며 로트렉은 위선과 가식으로 가득한 상류층과 달리 진솔하고 꾸밈없는 그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렇게 날것의 순간을 있는 그대로 담은 스케치를 모아 내놓은 작품이 석판화 연작인 엘르’(사진 5). 김희영 교수는 “‘엘르와 더불어 로트렉 작품 전반에는 인간이나 자연을 미화 없이 그려내는 19세기의 사실주의적 회화 경향이 반영돼 있다로트렉은 카바레와 환락가에 숨겨진 인간의 본능과 화려함 뒤에 따라오는 공허감을 포착하고 이를 사실주의적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5. 욕조에 물 채우는 여자(엘르 연작 中에서)(1896)몽마르트의 유곽에서 머물며 완성한 로트렉의 화집 ‘엘르’ 석판화 작품이다. ‘엘르’는 사창가 여인들의 소박한 일상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뿐만 아니라 감도 높은 석판 인쇄 매체를 사용했던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이 작품에서 로트렉은 강렬한 보색 대비로 효과를 줬던 포스터 작품과 달리 미묘한 중간색을 선택해 명암의 변화를 주고 평면적 구성을 이뤘다.
5. 욕조에 물 채우는 여자(엘르 연작 中에서)(1896)
몽마르트의 유곽에서 머물며 완성한 로트렉의 화집 ‘엘르’ 석판화 작품이다. ‘엘르’는 사창가 여인들의 소박한 일상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뿐만 아니라 감도 높은 석판 인쇄 매체를 사용했던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이 작품에서 로트렉은 강렬한 보색 대비로 효과를 줬던 포스터 작품과 달리 미묘한 중간색을 선택해 명암의 변화를 주고 평면적 구성을 이뤘다.

 파리 상류계층의 위선적 삶은 그에게 풍자 대상이 됐다. 툴루즈-로트렉은 격식으로 똘똘 뭉친 귀족들의 민낯을 파헤쳤다. 남프랑스의 명문 귀족이었던 그의 아버지마저 로트렉의 시선을 피해갈 수 없었다. ‘천박해! 진짜 천박해!’라는 직설적인 제목을 가진 작품에는 그의 아버지 알퐁스 로트렉 백작이 사람들과 함께 샌드위치를 삼키는 모습이 담겨 있다. 작품 앞에 멈춰 선 정우철 도슨트는 로트렉은 귀족들의 게걸스러운 식사 장면까지 그림에 담아 상류층의 가식적인 삶을 풍자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고독한 비관주의자의 죽음

 무대 위 희극이 무대 뒤 비극을 감추듯 툴루즈-로트렉은 자신을 희화화하며 내면의 괴로움을 감췄다. ‘나는 술에 취해 넘어져도 상관없어. 어차피 땅바닥에 있으니까.’ 그가 입에 달고 살았던 문장이다. 로트렉이 남긴 자화상 이미지를 들어 보인 정우철 도슨트는 목은 유난히 길고 얼굴은 몸통만 하며 구부정한 모습으로 표현된 남성에서 로트렉이 자신을 바라보는 비관적인 시선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평생 인물을 화폭에 담았던 그지만, 툴루즈-로트렉은 제대로 된 자화상 한 점 남기지 않았다. “전시회 한편에 자리한 샤를 모린(Charles Maurin)의 로트렉 초상화만이 그의 모습을 실제와 가깝게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그림이다.”

6. 경마(1899)1899년 착란 상태에 빠져 정신병원에 입원한 그는 영원히 감금될 것이 두려워 오로지 기억에만 의존해 자신이 봤던 경마장의 모습을 뚜렷이 재현해낸다. 더불어 같은 시기에 그려낸 37점의 ‘서커스’ 연작은 그의 회복을 증명했고 의사들은 그를 내보냈다. 굵고 강한 선이 그의 개성을 나타내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불안한 모습은 그의 심리적 상태를 반영한다.
6. 경마(1899)
1899년 착란 상태에 빠져 정신병원에 입원한 그는 영원히 감금될 것이 두려워 오로지 기억에만 의존해 자신이 봤던 경마장의 모습을 뚜렷이 재현해낸다. 더불어 같은 시기에 그려낸 37점의 ‘서커스’ 연작은 그의 회복을 증명했고 의사들은 그를 내보냈다. 굵고 강한 선이 그의 개성을 나타내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불안한 모습은 그의 심리적 상태를 반영한다.

 어릴 적 사고로 장애인이 된 이후로 툴루즈-로트렉은 평생 말에 오르지 못했다. 이는 아버지와 함께 말을 타고 사냥을 즐기곤 했던 그에게 평생 아물지 않는 흉터로 남았다. 여전히 말을 사랑했지만, 언제나 관찰자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전시회 한 섹션을 가득 채운 수십 개의 말 그림(사진 6)은 말을 향한 그의 지독한 외사랑을 보여준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은 그림의 대상으로 치환됐고, 내면의 열등감과 고통은 굵고 강한 선에 담겼다. 김희영 교수는 그의 내면적 고통이 강한 선과 힘으로 전환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상당히 절제된 상태에서 과장과 생략의 균형감이 세련미를 더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견디기 힘든 고통이 그림으로도 풀리지 않을 때 툴루즈-로트렉이 마지막으로 손을 붙인 것은 술이었다. 물랭 루즈는 로트렉의 영감이었지만 동시에 그가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폭음하고 병들게 한 곳이었다. 정신병원을 나온 후에도 그는 술을 놓지 못한 채 2년 뒤 세상을 떠났다. 우연은 운명이었을까. 친구 고흐가 자살했던 나이와 같은 서른일곱이었다. 성을 벗어나 몽마르트르 언덕을 내려온 로트렉은 끝내 붉은 풍차를 좇았다.

 

글 | 김영현 기자 carol@

사진 | 양태은 기자 aur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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