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6 15:38 (월)
시대와 함께한 민중가요, “과거에 머무를쏘냐”
시대와 함께한 민중가요, “과거에 머무를쏘냐”
  • 이동인 기자
  • 승인 2020.01.25 2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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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학생운동 열기에 전성기
오늘날엔 페미니즘·개인 정체성 등
다양한 가치 노래에 담아

 송환법 반대시위가 한창이던 작년 홍콩, 익숙한 노랫말이 이국땅 거리에 퍼졌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에게 헌정된 대표적 민중가요다. ‘운동권가요혹은 저항가요라는 별칭에서 엿볼 수 있듯 민중가요는 부당한 현실을 향한 비판의식을 담았다. 거리의 화염병이 촛불로 바뀌는 세월 동안, 사람들이 모인 곳엔 늘 민중의 노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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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오라지가 2019 성공회대 동아리문화제에서 꽃다지의 '주문'을 부르고 있다.

청춘 바쳐 부른 노래, 민중가요

 군사정권의 검열이 심하던 시절, 민중가요는 공식적인 경로로 유통될 수 없었다. ‘전진가로도 알려진 노래 가자가자를 작곡한 박치음(순천대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80년대 초에는 가명조차 쓰지 못했다이때 만든 노래들은 전부 입에서 입으로 퍼뜨리는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녹음된 음원이 없다 보니 노래가 퍼지는 과정에서 길이가 늘어나거나 멜로디가 바뀌는 일도 많았다. 1절짜리 노래 가자가자20절이 넘게 늘어나기도 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활발해진 학생운동과 함께 민중가요는 빠르게 성장했다. 기존에 있던 여러 장르의 노래를 민중가요로 삼았던 70년대와 달리, 임을 위한 행진곡가자가자같은 새로운 곡들이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창작되기 시작한 것이다. 19876월 항쟁을 거치며 민중가요는 전성기를 맞는다.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서 전해지던 민중가요가 독재정권이 물러서며 제도권 안으로 들어온 결과였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로 대표되는 민중가요 노래패가 성공을 거두며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같은 민중가요도 이 시기에 널리 알려졌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학생운동이 주춤하면서 민중가요의 방향성에도 변화가 일었다. 온라인상에 민중가요 이야기를 연재 중인 채희태 작가는 이전과 달리 선거를 통해 정부가 이뤄졌기 때문에 타도라는 말은 꺼내기 어려웠다민중가요도 적을 향한 투쟁보다는 우리 안의 감정을 다스리는 서정적 음악으로 흘러갔다고 분석했다. 힘들고 지쳤을 때 내게 전화하라는 그룹 꽃다지전화카드 한 장이 당시 분위기를 보여주는 예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선 꽃다지를 비롯한 일부 단체만이 전문적인 민중가요 창작을 이어갔다. 학생사회의 위축은 민중가요 수용자층에서 학생이 이탈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노래 수용자층은 노동계로 한정돼 민중가요는 오랫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런 와중, 간만의 대규모 민중가요 행사가 다음 달 열린다. 대중가수와의 협업으로 청년 세대와 연결을 시도했다. 콘서트 ‘the 청춘을 총괄한 김영복 감독은 우리 민주주의와 함께해온 민중가요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획을 시작했다콘서트를 시작으로 민중가요가 현재의 청춘을 포함한 많은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갔으면 한다고 밝혔다.

 

대학 노래패, ‘새길찾거나 새 곡짓거나

 민중가요 전성기와 함께 등장했던 수많은 대학 노래패는 세월을 거치며 수가 크게 줄었다. 식어가는 관심 속에서 민중가요 노래패의 명맥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저마다의 방향성을 모색 중이다.

 서울시립대 천상화음 하늘소는 지난 2019, 민중가요 노래패에서 노래 소모임으로 정체성을 바꿨다. 19년도 하늘소 회장이었던 이강산(서울시립대 경영18) 씨는 민중가요 신곡이 거의 나오지 않아 사람들에게 생소하다관심과 호응이 적어 공연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털어놨다. 2018년까지 공연의 70% 이상을 민중가요로 채웠지만, 2019년에는 비중을 대폭 낮췄다.

 올해로 35주년을 맞은 본교 애기능 중앙 노래패 노래마당의 동아리방에는 여전히 불나비’, ‘전화카드 한 장같은 민중가요 악보들이 큼직하게 붙어 있다. 매주 회의가 끝나고 누군가 벽에 붙은 악보를 연주하면 다 같이 노래를 부른다. 일 년에 두 번, 민중운동과 민중가요에 관해 발제하는 세미나도 진행 중이다. 19년도 동아리장을 지낸 최희원(생명대 생명과학18) 씨는 매년 집행부가 바뀌는 이월식에는 고학번 선배들과 희망의 노래를 함께 부른다소극적이나마 노래패의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래패의 성격이 소극적으로 유지되는 이유는 공연에서 민중가요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탓이다. 공연 주제에 따라 민중가요를 한두 곡 정도 올릴 뿐이다. 최희원 씨는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의견을 표출하듯, 여러 음악을 이용해 사회 문제와 20대의 고뇌를 다룬다사회를 향해 깨어있는 의식을 가지자는 노래패 성격은 유지하되 현실적인 공연 구성은 변화한 부분이 크다고 전했다.

 여전히 민중가요만을 다루는 노래패들도 남아있다. 성공회대 노래패 애오라지는 매년 선보이는 정기공연 외에도 학내외 투쟁 현장을 다니며 민중가요를 부른다. 민주화는 이뤄졌지만, 부정부패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작년 동아리장을 맡았던 박준형(성공회대 사회융합자율학18) 씨는 민중가요는 지배층에 대한 저항의식을 담고 있다당시 대학생들이 그랬듯 저항과 진실, 자주를 위해 노래한다고 말했다.

 현시대 청년의 새로운 문제의식을 찾아 노래하는 이들도 있다. 성균관대 아우성과 서울대 이다. 아우성 동아리장을 지낸 홍세라(성균관대 통계18) 씨는 사회가 다원화되며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한 생각도 사람마다 달라졌다가치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이 모일 때, 비로소 우리가 공유하는 문제의식이 무엇이며,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지 알게 된다고 전했다.

 ‘또한 공연의 메시지를 논의하는 자리를 가진다. 동아리장을 맡았던 송지연(서울대 국교18) 씨는 다 같이 모여 메시지를 정하다 보면 옛 대학생들이 좇던 것과는 다소 다른 가치가 등장하곤 한다근래에는 피상적 인간관계나 개인의 정체성을 주제로 다뤘다고 말했다. ‘은 개인의 정체성을 주제로 다룬 공연에서 자유로운 마음으로 자유롭게, 우리가 상상하는 대로 그대로라는 가사를 가진 꽃다지의 그대로를 불렀다. 과거에 만들어진 민중가요로 오늘날의 새로운 주제를 노래한 것이다. 송지연 씨는 같은 곡이라도 전체적 메시지와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노래에서 다양한 의미를 발견해 부르는 게 우리가 민중가요를 향유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옛 노래에 새로운 해석을 부여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몇몇 노래패는 창작곡을 만들기도 하지만, 청년의 문제의식을 충분히 대변할 만큼의 민중가요 창작 활동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박준형 씨는 근래 우리가 관심 가지고 바라보는 페미니즘, 소수자, 환경 문제 등을 다룬 곡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홍세라 씨는 아우성은 2017년부터 창작곡을 만들어 공연해오고 있다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지금의 관객들과 가까운 주제로 다가갈 수 있어 많은 어려움에도 꾸준히 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식어가는 관심 속에서도 이들이 노래패를 자처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민중가요가 사람을 위한 노래라서다. 송지연 씨는 노래를 부르며 사람을 떠올린다. 그는 민중가요는 소외된 사람과 가치를 위한 노래라며 살다 보면 잊게 되는 것들을 들여다보고 위로하는 느낌이 들어 부르게 된다고 말했다. 홍세라 씨는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자 민중가요를 부른다. ‘너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라는 인식으로 연대하는 것은 더 나은 세상에 살고 싶은 인간의 당연한 욕구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애절하게. 잊힌 가치와 사람을 위한 그들의 노래는 버텨온 세월만큼 깊다.

 

이동인 기자 whatever@

사진제공애오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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