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고대신문 독자위원으로 활동하며 작년 한 해 나온 고대신문을 한 호 빼고 다 읽었다. 유익하다, 잘 쓰인 기사들로 빼곡하다, 그러나 굳이 고대신문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쉽사리 답변하기 어렵다. 보도면을 제외한 기사 대부분은 대체로, 손가락 노동만으로 찾을 수 있는 정보들로 채워져 있었다. 아쉽게도 1890호 기사 또한 고대신문에 대한 내 생각을 변화시키진 못했다.

 결국, 고대신문의 본질은 보도면이다. 하지만 이번 1890호도 보도면이 아쉽다. 전 총학 시너지에 대한 공과 평가를 예를 들어보자. 시너지의 공은 지엽적이었고, 과는 총체적이었다는 게 학내 사회의 중론이다. 총학의 문제는, 정확히 말하자면 불통이라기보다는 편협한 소통이다. 소통이 편협할 순 있다. 모든 학내 구성원들을 다 포용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건 비단 학생사회 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대표기구의 숙명이다. 따라서 본인들의 편협함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공정하냐, 불공정하냐가 논점이 돼야 한다. 총학은 본인들을 지지했던 학생사회를 대표하기 위해 편협했던 게 아니었던 점이 문제다. 이 부분을 좀 더 면밀하게 분석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논란에 부딪힐 수 있다. 그러나 논란을 초래하지 않는 기사들로 가득 찬 무미건조한 신문은 아무도 읽지 않는다. 단과대 선거 투표율을 정리한 기사 또한 위의 맥락에서 아쉽다. 과별로 인원수가 다르므로 단순히 투표율을 비교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와 별개로, ‘과별로 투표율이 높고 낮은 게 보도 가치가 있는가? 그 보도 가치는 어디서 나오는가? 투표율이 낮은 게 문제인가? 왜 문제인가?’ 등등의 질문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단순한 통계의 나열을 넘어 더 큰 화두를 던져야 했다.

 물론 잘 쓰인 기사도 많다. 유튜브 뉴스에 관한 르포 기사는 현장감이 훌륭했다. 인공지능기획 보도도 훌륭했다. 대체로 고대신문의 기획 보도는 늘 알찼다. 겨울왕국에 사는 펭수와 유산슬 또한 글의 구성이 매우 훌륭해서 감탄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세상엔 좋은 글이 너무나 많다. 좋은 글들이 매일매일 쏟아지고 있고, 그 좋은 글들도 매체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있다. 결국, 관건은 단순히 좋은 글을 넘어서 독자들을 향한 중력을 가진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학내 언론이라면 당연히 그 중력의 코어에는 학내 사안에 대해 명징하고 냉철한 비판이 있어야 한다. 고대신문 기자들과 데스크들의 노력에는 늘 박수를 보내지만, 독자로서 야수성이 부족한 기사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허허로움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안정훈(미디어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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