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과학·민족주의 두 틀 깨고 조선 과학사 대해야”
“현대과학·민족주의 두 틀 깨고 조선 과학사 대해야”
  • 맹근영 기자
  • 승인 2020.03.15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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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와의 티타임 33 문중양(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오늘날 과학의 관점으로 당대 조선 과학 평가해선 안 돼

우열을 가리는 접근이 몰이해 낳아

  아인슈타인과 같은 위대한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문중양 교수는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막상 공부해보니 과학은 자기가 생각한 것과 너무나 달랐다. 방황하던 그가 고민한 끝에 택한 길은 과학사였다. 그 학문의 길에서 과학 본연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조선 후기 동서양 과학의 만남에 주목했다. 부단한 연구와 노력 끝에 문 교수는 이공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과학서와 역사서로 가득 찬 연구실. 함께 쌓여온 세월의 흔적이 그가 걸어온 길을 보여주고 있었다.

문중양 교수는 "지난 과학을 ‘있는 그대로’ 마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 과학사의 대상인 과학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다른가요

  “과학을 정의하고, 과학의 범위를 규정하는 것은 과학철학의 영역입니다.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과학철학에서도 어디까지가 과학인지에 대해 다양한 결론이 나오기에 과학의 범위는 얼마든지 넓어지고 좁아질 수 있습니다. 비록 역사학자의 일은 아니지만, 과학사 연구에서도 나름대로 판단 기준이 있습니다. 저는 과학자를 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이편이 더 쉬워요. 과학자에 대해 공동체 내에서 공유하는 상식이 있기때문이죠. 그 과학자가 다루는 것이 곧 과학이라고 봅니다.”

 

- 우리는 어떻게 지난 과학을 바라봐야 하나요

  “과학자와 과학사 해석자의 자세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학자는 현재 자신이 아는 과학이 보편적인 과학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그런데 현재의 과학도 결국 하나의 역사적 산물입니다. 우리가 현대과학을 평가 잣대로 삼으면 수백 년 전의 과학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해요. 현시점에서 과거의 과학을 해석하기에 편향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에서 과학사 연구가 시작됩니다. 여느 역사 연구와 같이 과학사를 해석할 때도 시대별로 적용하는 기준이 달라야 하는 거죠.”

 

- 서양 근대과학과 동양 전통과학의 기본적 패러다임은 어떻게 다른가요

  “동양 전통과학과 서양 근대과학을 많이들 비교하곤 하지만, 양자의 층위는 아예 다르지 않나요? 비교 대상이 틀렸습니다. 동양의 전통과학과 비교해야 하는 것은 과학혁명 이후의 서양 근대과학이 아니라 서양 중세과학이에요.

  동양 전통과학의 주류적 인식체계인 장재(張載)의 기일원론(氣一元論)적 자연관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장재는 원초적 기()의 분리, 취산(聚散, 모임과 흩어짐), 감응(感應, 어떤 느낌을 받아 움직임), 즉기의 운행으로 우주의 탄생과 자연현상을 설명했어요. 뉴튼의 운동법칙인 F=ma로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서양 근대과학과는 완전히 비교 자체가 불가한 체계죠. 이렇게 다른 층위의 과학에서 차이를 찾고, 우열을 가리기보다는동서양 과학의 전통관이 어떻게 다른지 파악하는 것이 적절한 비교라고 봅니다.”

 

- 조선 과학사 해석에 있어 방해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앞서 언급한 현대과학이라는 잣대와 민족주의적 역사 인식이 조선 과학사 몰이해의 두 축입니다. 이 시각에 부합하는 사실만 부각하고 그렇지 않은 건 배제하는 일이 큰 문제예요. 특히 서양 근대과학이 지배하는 현대과학의 아성은 조선 과학사 해석에서도 너무나 견고합니다. 현대과학과 유사한 과학만 과학의 범주에 포함하고, 주목하는 것이죠. 가령 우리가 세종대의 과학 업적으로 꼽는 천문·기후 관측기구가 당시 과학 성과의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기의 운행과 같은 것들은 비과학적이라고 치부해버리고 맙니다. 고질적인 민족주의적 역사 인식도 여전합니다. 어떻게든 우리 역사에서 자랑스러운 부분만 부각해서 역사상을 만드는 거죠.”

 

- 조선 과학이 세종대에 가장 융성했다는 것은 통념인가요

  “역시 민족주의적 역사해석 안에서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부분입니다. 조선 초기인 세종대에 과학이 가장 융성했고, 그 이후로 조선의 과학기술에 성과가 없었다면 조선왕조는 500년 동안 이어지지 못했을 겁니다. 조선 전기 역법인 칠정산과 후기 역법인 시헌력을 비교하면 당연히 시헌력이 더 정교해요. 전체적인 과학기술의 흐름에서 쇠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 예로 드신 역법은 조선이 중점적으로 펼친 과학기술 정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역법연구는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했던 가장 중요한 과학기술 정책이었습니다. 세종대에는 칠정산이, 후기에는 시헌력이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됐죠. 특히, 현재 음력으로 알려진 시헌력은 완전히 소화해 우리 것으로 정착시키는 데 150년이 걸릴 정도로 조선 정부가 심혈을 기울였던 사업이에요. 사실 왕조가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역법을 새로 만드는 일입니다. 천문학이 곧 나라의 근간이 되는 학문이기 때문이죠. 조선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 역법 확립과 역서 편찬은 조선의 자국력(自國曆)과 고유성을 향한 노력이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민족주의적 역사관으로 바라보면 역법연구를 중국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것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이해하게 됩니다. 사실 역법연구는 중국의 것을 배워와 우리 과학기술을 중국 수준으로 끌어올리자고 한 의도가 컸어요. 당시 역법이 조선의 환경에 맞춰 연구된 것은 사실이지만, 조선의 독자적이고 고유한 체계를 확립한 정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150년 걸려 완성한 시헌력도 중국 청나라에서 서양 역법으로 만든 것을 바탕에 둔 거예요. 모방과 수정일지라도, 우리 역법연구의 가치는 충분히 인정할 만한데 민족주의적 관점에서는 이를 부정하는 것이죠.”

  문 교수는 지난 과학을 있는 그대로마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점을 둘러보면 대중서든 역사서든 일부 역사를 지나치게 찬양하거나 비하하는 서적이 많습니다. ‘과학자로서 사명을 갖고 연구에 매진한 조선 과학자들의 다양한 연구가 이런 편견에 휩쓸려가는 것이 아쉬워요.” 그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건 민족주의현대과학이라는 편향성의 탈피였다. 편견에서 벗어나야 역사를 이해하는 출발점에 설 수 있다. 그가 조선 과학사를 연구하며 꺾지 않는고집이다.

 

| 맹근영기자 mangrove@

사진 | 배수빈기자 sub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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