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이 세계로 뻗어 나간 지도 벌써 20여 년이 흘렀다. 처음에 그것은 한류의 한 가지에 불과했다. 로맨틱 코미디나 퓨전 사극과 같은 한류 드라마를 통해 한국 문화와 친해진 외국인들이 음악과 영화와 같은 다른 대중문화 장르로 관심을 옮겨가면서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케이팝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탄생과 동시에 세계시장을 겨냥하기 시작한 케이팝은 그래서 본질적으로 초국가성을 그 산업의 본질로 삼았다. 그리고 그 초국가성은 지난 20년간 케이팝이라는 음악, 그리고 케이팝을 즐기는 대중들의 성격, 마침내 케이팝이라는 카테고리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있다.

  세계 최고의 팝 그룹으로 올라선 BTS의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BTS는 단순히 케이팝 역사상 가장 성공한 보이밴드가 아니라, 케이팝과 국제적인 팬덤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꾼 그룹이기 때문이다. BTS는 한국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 아니었지만, 팝의 본고장인 미국 케이팝 팬들에 의해 일찌감치 발견되었다. 2014, 불과 데뷔한 지 1년도 안 된 이 그룹은 북미 케이팝 페스티벌인 케이콘을 통해 화려하게 주목받았고, 2015년부터는 빌보드 차트에 올라 소위 ‘BTS 현상의 단초를 마련했다. 2017년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 상을 수상하면서 이들은 명실상부한 가장 핫한 케이팝 밴드이자 글로벌 스타로 우뚝 서게 된다. 그리고 북미에서 불어닥친 이 BTS 광풍은 한국으로 역수입되기에 이른다. 케이팝의 미래가 한국이 아닌 미국 팬덤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다.

  케이팝이 한때는 동아시아권 이상을 넘지 못하는 국지적인 현상이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BTS의 성공은 케이팝의 세계화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고 있다. 한국에서의 성공과 명성을 이용해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필요 없이, 세계시장으로 직접 뛰어들어 전 세계 팬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마음을 얻는 일이 가능해졌다. 유튜브나 소셜미디어 등의 뉴미디어는 문화를 소비하는 시간차를 사실상 완전히 제거해주었고, 이에 따라 외국 케이팝 팬들의 취향은 한국 팬들의 취향을 따라갈 필요 없이 독자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북미 팬들이 무명이었던 BTS를 발굴해 세계 최고의 그룹으로 키워낸 것과 유사한 형태의 모델이 언제든지 만들어질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최근 북미에서 뚜렷한 성장세를 거둔 두 아이돌 그룹을 주목한다. 바로 몬스타엑스와 스트레이 키즈다. 소위 포스트-BTS 그룹이라고 불러도 좋을 이 두 팀은 힙합과 강렬한 이미지에 기반을 둔 음악, 직접 곡을 쓰고 프로듀스가 가능한 뮤지션형 그룹, 미국 시장에서의 적극적인 스킨십이라는 측면에서 BTS의 성공 모델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한국 내에서의 반응과 무관하게 미국시장에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고, 현지 팬들의 유의미한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대중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이름들이지만 이미 미국 내에서는 아레나 투어가 가능할 정도로 팬덤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한국이라는 본토의 유명세와는 무관한 국제적 로컬의 인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이 같은 변화를 산업도 발 빠르게 포착하고 있다. 이제 북미를 비롯한 해외시장은 부수적인 옵션이 아니라 중점적으로 공략하는 시장으로 그 의미가바뀌고 있다. 아직 스타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중소 기획사의 아이돌 그룹을 중심으로 최근 미국시장에서 인디에 가까운 소규모 공연과 팬 미팅을 벌여 팬덤을 확보하는 것이 새로운 추세로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새로운 변화를 반영하는 흥미로운 움직임일 것이다.

  작년에는 SM이 미국 굴지의 음반업체인 캐피톨 레코드와 손잡고 슈퍼엠(SuperM)이라는 그룹을 론칭했다. 한국시장과는 무관한 미국 시장용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케이팝의 세계화의 국면에서 흥미로운 사건이라 할만하다. 또한, WayV처럼 케이팝의 기술로 만들어진 해외 그룹도 하나둘씩 베일을 벗고 있다. 이건 케이팝이 국가라는 단위에 종속되지 않는 일종의 공식이나 모듈로 진화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케이팝은 이렇게 단순히 국경을 넘는 것을 넘어 다양한 주체와 팬덤이 각자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하나의 개념으로서 세계 시장에 침투하고 있다.

 

| 김영대(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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