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참 좋은 사람 같아.” 빈 병이 적잖이 쌓인 늦은 밤, 꽤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말했다. 고민이 있다기에 열심히 들어준 모습이 퍽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낯간지러운 말은 싫어하는 녀석인데, 표정이 사뭇 진지한 걸 보니 취기가 많이 오른 것 같았다. “칭찬을 해줘도 왜 반응이 없어?” 한참을 별 대답 없이 쳐다보고 있으니 녀석이 다그쳤다. 평소라면 괜한 소리 하지 말라며 받아쳤을 말인데, 진지해진 게 녀석 혼자만은 아니었다. “별로 좋은 사람 아냐. 가자.” 계산서를 집고 먼저 일어섰다. 가만히 앉아 있기엔 속이 울렁거렸다.

  중학생쯤이었나. 아마 교과서였던 걸로 기억한다. <서시>였다. 첫눈에 윤동주가 좋았다. 죽는 날까지, 그것도 하늘을 우러러서 부끄럽지 않겠다니. 멋있었다. 나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다. 누구 앞에서든 떳떳할 수 있게.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하면서.

  10년이 지났다. 바랐던 만큼 좋은 사람은 되지 못했다. 되돌리고 싶은 순간들이, 주워 담고 싶은 말들이 적지 않다.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상처도 줘버렸다. 벌써 부끄러운 일투성이다. 오랜만에 펼쳐본 <서시>는 첫 행부터 가슴에 꽂힌다. 가차 없는 시다.

  하늘은커녕 떳떳하게 시를 읽어낼 자신도 없지만, 괜찮다면 계속 윤동주를 좋아하고 싶다. 한 점 부끄럼 없는 인생은 이미 글렀어도 부끄러워할 수 있는 인생이라도 살았으면 해서다.

  안 좋은 기억은 쉽게 무뎌진다. 죽을만큼 힘들었던 순간도 시간이 흐르면 덤덤하게 떠올린다. 부끄럼도 그렇다. 처음에야 얼굴이 화끈거릴 뿐, 금세 익숙해진다.

  염치(廉恥).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살아가는 동안 또 많은 잘못을 저지를 거다. 후회할 일을 하고, 또 누군가에게 상처 입힐지도 모른다. 그렇게 부끄러운 일들이 쌓여갈수록 더 간절히 그를 떠올리고 싶다. 그를 떠올려 부끄러워했으면 싶다.

 

| 이동인기자 what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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