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인천 앞바다에 쓰러진 펭귄에게 누군가 손 내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오늘날 구독자 211만 유튜버 펭수를 만든 힘은 EBS 면접날 펭현숙 씨가 차려준 순댓국과 편견 없는 이들의 응원이었다.

  펭수는 남극의 소수자였다. 2m 넘는 키는 넘지 못 할 관계의 벽이 되었다. “특별하면 외로운 별이 된다는 꼬마 펭귄의 혼잣말은 이제 자이언트 펭TV’의 가사로 쓰인다. 이제 외로운 별의 얼굴은 잠옷과 다이어리, 스티커를 채우고 있다.

  늦은 개강을 맞은 대학가 어딘가에도 스티커 자국 같은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불가능한 꿈을 이야기했고, 성별이 불분명한 데다, 뭘 해도 지는 이방인. 펭수가 아닌 트랜스젠더 A 씨다. 방학 내내 둘이 받은 응원의 격차는 너무나 컸다.

  얼마 전 찾아간 숙명여대는 춥고 한산했다. 줄줄이 얽힌 입학 찬반 대자보는 소수자를 위해 세운 학교의 포용력 부족을 지적하거나, 남성 권력을 누린 가짜 여성의 침입을 우려하는 목소리로 뜨거웠다.

  특히 여대는 생물학적여성 권익을 위한 공간이니 소수자 파이를 나눌 수 없다는 글은 적나라해서 오히려 절박해 보였다. 여성은 늘 남자에게 졌으니까. 넌 원래 남자니까. 숙대는 우리가 이기라고 만든 학교니까.

  그런데 A 씨 입학 반대를 위한 일부 전제는 의아했다. 그는 신체 변환 직전까지 여성을 이기는 남성성을 편안히 누려왔을까. 이슬람권에선 트랜스젠더가 남성으로 인식되니 히잡 안 써도 괜찮다는 얘기가 이 상황에 들어맞나. 급기야 A 씨 기점으로 신체 전환 범위를 알 수 없는 남자들이 입학해 외부 침입자와 구분되지 않으리란 예언도 나왔다. 이렇게 A 씨는 여자 아닌 소수자면서 숙명인이 져선 안 될 남자가 되어버렸다. 결국 그는 입학을 포기하고 학습지를 다시 폈다.

  반면 울타리 안에서는 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젊은 꿈을 품었고, 성별이 분명한 데다, 이방인 아닌 집주인들은 의견이 달라도 똑같은 응원을 주고받았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우선적 공감이 여성을 뒤로 제친다는 이분법적 대자보 말미에는 연대합니다쪽지들이 꽃목걸이처럼 둥글게 달려있었다. 그 가운데 마름모꼴로 피어난 포스트잇은 이렇게 단언했다. “결국,우리가 이길 것이다.”

 

<한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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