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재
동국대 교수· 다르마칼리지

  한동안 망설이던 세계보건기구(WHO)가 유럽과 미국으로의 확산세에 놀라 세계적 대유행, 즉 팬데믹을 선언했다. 1948WHO가 설립된 후, 팬데믹 선언은 홍콩독감(1968), 신종플루(2009)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는 전세계로 퍼졌고, 이제 이 사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 지역, 국가는 없다. WHO는 감염병의 통제에 대한 희망을 말하지만 반대로 절망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세계는 위험한 곳으로 돌변했고, 거리엔 온통 국경 봉쇄와 인종 혐오, 사재기에 대한 뉴스로 가득하다.

  팬데믹 선언은 코로나 사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끝이 어디인지 예측을 불허할 정도다. 그럼에도 사태는 끝날 것이고, 우리는 또 다른 일상을 살 것이다. 그에 따라 기억도 희미해져 갈 것이다. 신종플루와 메르스 사태의 아프고 힘든 기억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 고비만 넘기자는 격려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위로는 분명 큰 힘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시야를 넓혀 코로나 사태라는 나무와 함께 글로벌 위험사회라는 숲을 보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백신과 항생제의 발명은 감염병과의 전쟁의 판도를 단숨에 바꿔놓았다. 인류는 수많은 감염병을 하나씩 정복해나갔고, 천연두의 박멸은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최종 승리와는 거리가 멀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에볼라, 지카 등 세계 곳곳에서 각종 신종감염병이 출몰하기 시작했고, 과거의 감염병도 하나둘씩 귀환하고 있다. 구제역과 아프리카 돼지 열병 같은 각종 가축전염병과 광우병, 조류독감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에 대한 우려로 수많은 동물들이 생매장당하고 있다. 감염병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인류의 자신감은 흔들리고 있고, 같은 선상에서 현대문명의 방향성에 대한 근본적 회의도 커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기후변화와 인류세(人類世,anthropocene), 미세먼지와 플라스틱 등을 둘러싼 논란이 잘 보여주듯 글로벌 위험사회의 명암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인류는 기술문명 덕에 지구촌을 건설하고 풍요와 안전을 누리게 되었지만 동시에 그 문명이 예기치 못하게 초래할 수 있는 파국적 미래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기술문명의 파국적 미래를 그린 SF영화가 많아지고 있는 현실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코로나의 전파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뛰어난 전파력을 지닌 변종의 출현이라는 내적 요인 외에도 그런 전파를 가능하게 만든 외적 환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재 코로나의 피해가 미국, 일본, 중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한국 등과 같은 글로벌 네트워크의 허브 국가들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우연일까? 인류의 번영 전략은 상호의존적이고 긴밀하고 이질적인 글로벌 네트워크의 구축에서 찾을 수 있고, 1945년 이후의 대가속 시대(the Great Acceleration)’는 그 전략이 성공적임을 보여준다. 엄청난 물자와 사람, 정보가 이 네트워크를 따라 이동하고 있는데, 코로나는 바로 이 길을 따라갔다. 그런 점에서 역설적으로 기술문명이 코로나 사태에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와의 전쟁이 힘든 이유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차단하면 인류의 삶 자체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여기에 글로벌 위험사회의 딜레마가 놓여 있다.

  우리는 현재 우리의 살을 베어내는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인간의 의미를 부정해야 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하고, 세계경제를 멈춰 세우는 글로벌 네트워크 차단이라는 극단적 조치를 감수해야만 한다. 방송에서 들은 전문가의 말처럼,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인류가 근근이 승리를 거둬왔다는 점에 기대를 걸어본다. 그러나 익숙함과의 작별하기는 잠시 동안의 불편 감수에 머물지 않고 인류의 필수적 생존 조건이 되었다. 기후변화와 미세먼지에서 보듯, 글로벌 위험사회의 숙명이다. 전인미답의 길을 가야만 하는 인류에게 과거의 생존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래서 폐쇄와 배척이 아니라 개방과 연대 그리고 협력에 힘써야 한다. 더뎌 보이지만 가장 확실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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