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벳 골드마인>과 <캐롤>같은, 그간 주로 다소 탐미적(耽美的)인 영화를 만들어 온 토드 헤인즈 감독을 생각하면 이번 신작 <다크 워터스>는 뜻밖의 느낌을 준다. 사회적 주제의식이 앞선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건 그만큼 이 영화의 기반이 됐던 리얼 스토리에 토드 헤인즈 스스로 엄청난 공분을 느꼈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사실은 영화 <캐럴>도 그런 사회성이 담겨져 있는 작품이긴 했다. 동성애에 대한 오랜 사회적 편견에 대한 분노 같은 것.

  영화 <다크 워터스>는 미국을 대표하는 화학 기업이자 글로벌 기업인 듀폰의 환경 비리를 다룬 내용이다. 듀폰에게 여지껏 매년 엄청난 수익금을 가져다 주는 제품 중의 하나가 바로 프라이팬의 코팅 재료인 태프론이다. 그런데 이 태프론을 만들기 위해서는 C8 혹은 PFOA라고 불리는 화학 합성물질이 필요한데 이걸 만드는 과정에서 엄청난 독성 물질이 발생한다. 듀폰은 이걸 폐기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환경 문제를 야기시켰고 그것을 또 은폐하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영화는 그 진실을 밝혀 내려는 한 변호사의 오랜 법정 투쟁을 그려 나간다.

  모든 얘기는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시작된다. 웨스트 버지니아는 전설의 컨트리 가수 존 덴버가 부르는 노래 <테이크 미 홈 컨트리 로드>의 첫 구절에도 나와서 사람들은 전원 풍경의 평화로운 시골길을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미국에서 가장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으로 꼽힌다. 한 마디로 못 사는 동네다. 영화에서도 그걸 잘 보여 준다. 듀폰 사가 노린 것도 그것이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많은 만큼 독성 화학물질의 문제가 감춰질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듀폰은 웨스트 버지니아 주 파커스버그에 공장을 세웠으며 결국 여기에서 사단이 났지만 주민 대다수는 듀폰이 자신들 가정에 일 자리를 주는 좋은 회사라고 생각한다. 얘기의 시작이, 그렇지 않은, 그러니까 화학공장에 다니지 않는, 농부 윌버 테넌트에게서 비롯되는 건 그 때문이다. 테넌트는 그렇기 때문에 주민들에게서 비난과 따돌림을 받는다. 싫으면 당신이 떠나라는 식이다.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가 대 노동자의 싸움은 늘 노동자 대 노동자의 싸움으로 변질된다.

  테넌트의 농장에서는 몇년 전부터 젖소들이 이유도 없이 190마리나 흉측한 모습으로 죽어 나가고 다른 가축들에게서도 기형들이 잇따라 나타난다. 테넌트는 변호사인 로버트 빌럽에게 듀폰을 고소해 달라고 요청한다. 롭 빌럽은 처음엔 기껏해야 민사 합의금 정도를 받아내는 소송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마땅찮아 하는 대표 변호사 톰(팀 로빈스)을 설득해 법정 싸움에 나선다. 하지만 이 소송은 결국 어마어마한 환경 소송전으로 확대된다. 당연히 롭 빌럽의 삶은 송두리째 뒤바뀐다. 그의 가족과, 법률회사와, 웨스트 버지니아와, 미국과, 전 세계 모두가 큰 회오리에 휘말리게 된다. 개인이, 일개 법률회사가 거대 기업을 상대로 하는 싸움에서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영화는 그 위대한 과정을 보여 주려 애쓴다.

  영화 <다크 워터스>는 두 가지 점에서 명징한 깨달음을 얻게 만든다. 하나는 지옥의 얼굴을 본 자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지옥의 얼굴=실체적 진실’이라는 점이다. 진실은 정의롭고 아름다우며 평화로울 거라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추악하기가 이를 데가 없는 것이다. 진실을 알게 된다는 것은 그만큼 삶의 고통을 껴안게 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영광의 길이라기 보다는 때론 매우 가파른 추락의 길일 수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롭 빌럽이 겪게 되는 일들이 바로 그렇다.

  깨달음의 또 하나는, 진실을 추적하고 밝혀 내는 과정이 결코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테넌트 Vs. 듀폰의 소송이 시작된 것은 1998년이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소송전은 한창인데 그게 2017년으로 나온다. 그마저도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이다. 20년 동안 법정 투쟁이 계속돼 왔고 현재도 진행중임을 보여 준다. 진실을 밝히는 과정은 결코 쉽고, 짧게 성취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늘, 싸움은 지금부터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일희일비해선 안된다. 따라서 좌절은 금물이다. 항상 장기전에 대비할 줄 알아야 한다. 토드 헤인즈는 그 점을 염두에 둔 듯, 영화의 전체 서사 구조를 주인공 롭 빌럽의 광기에 버금가는 끈질긴 투지와(그는 듀폰 사가 보낸 수십만장에 이르는 문건을 일일히 검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중간중간에 빠지게 되는 좌절의 수렁 사이를 리드미컬하게 오가며(정의를 추구하는 것도 시간이 오래 지나면 가정과 직장 내에서 늘 반대와 회유에 부딪히게 된다. 아내 사라는 롭을 종종 몰아치고 사장 톰은 과도한 법정 비용 탓에 그가 적당히 물러서기를 바란다. 롭은 지나친 스트레스로 일시적인 뇌졸중을 일으키기도 한다.) 극적 재미를 잃지 않게 만든다. 그 과정이 꽤나 웅변적이다.

  예컨대 롭이 듀폰을 상대로 하는 소송을 본격화 하려 하자 회사 내 파트너 변호사들 상당수가 반대하며 그를 공격까지 하려 한다. 그때 대표 변호사인 톰은 이렇게 소리친다.

  “이 친구가 수집한 증거를 제대로 보기나 했어? 다들 좀 읽어! 듀폰의 미필적 고의와 부패 혐의를 파악하고 난 뒤에나 우리가 그걸 방관해야 할지 말지를 얘기해! 이래서 미국인들이 변호사를 싫어하는 거야. 이런 게 다 전 세계 시민운동의 불씨가 되는 거고. 우리는 듀폰을 잡고 싶어 해야 해! 미국 기업이란 게 이거보단 나아야 하는 거잖아! 그렇지 않은 기업은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야 하고!”  

  롭을 지원 사격하는 톰의 일갈에서는 기업이란 게, 지배층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무엇보다 교양 있고 학식 있는 사람들이, 이거 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성찰을 느끼게 한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다 한들 정의로워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눈물겹다. 이 영화 <다크 워터스>는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 우리에게도 여전히 정의로워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도 사회적 정의의 실현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시간이 더디게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 모두 이 영화 <다크 워터스>로 위안과 위무를 받기를. 선한 의지는 결국 올바른 성취로 이어지게 돼 있다. 진실이 늦는다고 해서 진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오동진(영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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