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만 해도 정말 평탄했습니다. 신종플루, 메르스가 퍼질 때에도 학교도 갔고 학원도 갔고 밖에서 놀 거 다 놀았고, 같은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인데도 일상에 흠집 하나 나지 않았습니다.한 달 전에는 학원도 갔었고 짧아지는 방학에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입니다. 저는 강의와 과제에 치이는 일상이 불멸이고 지긋지긋하고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학원도 쉬고 집에서 취미생활도 마음껏하고, 당연히 이런 생활이 즐겁지 않겠어요?

  근데 정말 묘한 게, 그렇게 지긋지긋한 일상이 요즘 따라 너무도 그립답니다. 과제에 치이는 그 힘든 생활을 잃을까 봐 무서웠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제 친구들도 차라리 학교에 가고 싶다더군요.

  컴퓨터 프로그래밍에는 정보 은닉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정보를 은닉한다는 뜻인데, 프로그래머가 자신과 다른 프로그래머들을 위해서 정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입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자료를 숨기는 것은 프로그램이 더 빨리 돌아가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프로그래머의 행동을 제약하게 됩니다. 근데 잘 보면, 선택지가 많다는 것은 항상 유쾌한 일이 아니에요. 다음과 같은 상황을 봅시다.

  학교에서는 학생이 지각하면 그의 태도 점수를 제해야 합니다. 이를 코딩으로 구현하면 학생이라는 자료 묶음 안에 태도 점수라는 숫자 자료를 만듭니다. 학생이 지각할 때마다 그의 태도 점수를 직접 낮추면 됩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지각하다()’라는 이름의 함수를 선언하고 그 학생의 태도 점수를 낮춘다라고 함수 정의에 포함합니다. 전자를 자료에 직접 접근한다고 하고 후자를 자료에 간접 접근한다고 하는데 대체로 후자를 선호합니다. 만약 태도 점수가 0일 때는 더 깎지 않거나 학사경고를 주는 등의 추가처리가 필요한 상황이 오는데, ‘지각하다()’라는 함수의 정의에 추가하는 것만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보 은닉은 간접 접근을 강요하기 위해 자료에 직접 접근을 금지하는 겁니다. 선택지가 줄어서 실수할 여지가 사라지는 거죠.

  자기 관리란 나에게 주어진 자유를 나를 위해 적절히 제약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압박하지는 않지만 내가 지치지 않고 진전하게 하는 제약이 좋다고 느꼈습니다. 학교에선 제가 힘들어도 그만큼 제가 진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집에서는 제가 진전이 없었던 거 같습니다. 누가 특별히 저를 막은 것도 아니고, 정확히 말하면 아무도 절 막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정지하고 있는 걸 겁니다.

배효종(정보대 컴퓨터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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