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화사한 건 꽃가루 묻힐 새와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서라지만, 활짝 핀 개나리 옆에 멈춰 서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새 학기의 설렘을 느끼기엔 마음 무거운 나날들 속에서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서울 맨 아랫자락, 양재꽃시장엔 새 계절이 이미 가득했다.

 이른 아침 꽃시장은 고요하다. 생화도매시장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꽃을 사람 키만큼 높이 쌓은 점포들이 새벽부터 물건 떼러 온 이들을 맞느라 분주하다. “어떤 거 찾아? 요새는 프리지아가 제일 잘 나가는데!” ‘한아름원예김선자(·75) 사장이 샛노란 꽃 더미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말처럼, 다닥다닥 붙은 점포마다 프리지아를 맨 앞에 들여놨다.

 

 인천에서 꽃집을 하는 한현숙(·70) 사장도 프리지아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렇게 싼데도 많이 못 사가요. 손님이 원체 없으니.” 못내 아쉬운 눈빛으로 가게를 둘러보던 그는 그래도 찾아주는 손님을 위해 예쁜 물건을 가져갈 거라며 프리지아 한 단을 집었다. “무슨 꽃이든 노란 게 향이 제일 좋더라고요. 신기하죠?” 그는 집어 든 프리지아를 코로 가져갔다. 생각처럼 달큰한 향이 나는지, 몇 번이고 숨을 들이마셨다.

 

 김파우스티나(·51) 수녀도 도매시장을 찾았다. 강렬한 원색 꽃잎들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는 잿빛 두건이 오히려 눈에 띈다. “이 집은 수선화가 없네요. 좀 더 일찍 왔어야 했나 봐요.” 매주 진행하던 꽃꽂이가 2월 말부터 중단돼, 오늘은 아쉬운 대로 성당 화단에 심을 꽃을 보러 온 그다. 작년보다 늦게 꽃시장을 찾은 탓에 수선화 철이 지났을까 걱정이다. “수녀님, 저쪽 건너편 가게 한 번 가 봐요! 아마 거기서 봤던 것 같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상인이 번뜩 떠오른 듯 말했다. 반가운 친절에 미소로 감사를 전한 김 수녀는 수선화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해가 하늘 높이 오른 시간이면 분화온실에도 사람들이 들어찬다. 투명 천장에서 내리는 햇살에 습한 공기까지 더해져 식물원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 곳이다. 만지면 안 돼! 이리 와.” 한지은(·35) 씨가 고개를 돌려 외쳤다. 시선을 따라가니 하늘빛 엘사 드레스에 마스크를 찬 아이가 포동포동한 손으로 다육이를 눌러 보고 있다. 촉감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오랜만에 밖에 나간다고 하니까 엘사 드레스 입겠다 하더라고요. 또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데, 한번 입혀주기로 했어요.” 한참 자리를 못 뜨는 아이를 위해 아이 엄마는 다육이 하나를 사기로 했다. “예쁘게 돌봐줘야 해. 알았지?” 아이는 제 손보다 큰 화분을 두 손으로 받아 든 채 고개를 끄덕였다. 간만의 짧은 외출을 마무리한 모녀는 작은 봄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동인 기자 whatever@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