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가해 중심의 '성범죄'정의

디지털성범죄 처벌에 한계

불법촬영물 유포 협박 따로 다뤄야

  지난 26,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사건의 근본적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렸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는 궁금한 것은 오로지 검찰과 법원과 사회가 그를 어떻게 벌할 지다라고 외쳤다. 현행 성폭력처벌법은 디지털 성범죄를 엄정하게 처벌할 준비가 돼 있을까.

  지난 5, 국회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의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다. 기존 성폭력처벌법의 사각지대에 있던 딥페이크 불법 촬영물’(특정 인물의 얼굴을 음란물에 합성한 영상편집물)과 같은 불법 촬영물의 편집·합성·가공 및 유포 행위를 처벌하고, 영리 목적의 유포 행위를 가중 처벌하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다.

  처벌 대상 범죄를 세분화해 처벌유형을 확대했지만, 개정 성폭력처벌법으로 현재 자행되는 디지털 성범죄의 가해와 피해를 규율하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형법상 성폭력범죄는 폭행 및 협박에 의한 간음(성기삽입) 또는 추행 행위를 기본적 형태로 구성한다. 이에 따르면 디지털 공간에선 물리적 가해와 피해 행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또 익명성과 기술적 장벽으로 인해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가 어렵다. 기존 오프라인 중심의 성범죄에 대한 형사법적 규정을 디지털 성범죄에 그대로 적용했을 시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것이다. 지속적인 법 개정을 통해 기술 발전으로 빠르게 신종 범죄화되는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을 반영할 것을 사회 각계에서 요구하는 이유다.

  특히, 성폭력처벌법에 불법 촬영물 유포 협박에 관한 규정을 따로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불법 촬영물 유포 혹은 비동의 유포에 대한 처벌규정은 존재하지만, 유포 협박은 형법상 협박죄에만 해당하기 때문이다.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 전국연대 이하영 공동대표는 이번 ‘n번방사건과 같이, 성착취의 대부분이 유포 협박에서 시작되는 현실에서 3년 이하 징역에 해당하는 협박죄는 처벌수위가 낮다고 주장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차인순 수석 전문위원 역시 유포 협박이 디지털 성폭력의 일환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 형법이나 성폭력 처벌법에 불법 촬영물에 대한 유포 협박 형량을 강화해 별도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전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불법 촬영물 단순 소지 행위를 현행 성폭력처벌법상 처벌할 수 없는 점도 지적된다.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청소년성보호법)로 처벌 가능한 아동·청소년 불법 촬영물 단순 소지와 달리, 성인 대상 불법 촬영물 소지는 영리적 목적이 없는 경우에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다운로드의 개념에서 머무른 불법 촬영물 소지의 개념을 디지털 이용 행태에 따라 확장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하영 공동대표는 최근에는 영상 다운로드보다도 스트리밍과 단순 시청이 불법 촬영물의 주 이용 행태인 만큼 소지의 개념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n번방사건이 텔레그램이라는 플랫폼을 중심으로 전개된 것처럼 플랫폼에 불법 촬영물 관리와 유통 방지에 관한 의무를 부과할 필요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불법 촬영물의 유통을 막기 위해선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협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박철범 변호사는 불법 촬영물을 차단할 수 있는 권한 또는 의무를 부과한다는 것은,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불법 여부를 판단하는 일차적인 권한을 부여한다는 의미라며 현실성 확보를 위해 콘텐츠의 불법 여부를 판단하는 구체적인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불법 촬영물만을 효과적으로 스캐닝할 수 있는 기술적인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단계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 정용재·신혜빈·조민호 기자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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