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공간 만나 더욱 잔혹해진 성범죄
디지털 공간 만나 더욱 잔혹해진 성범죄
  • 조민호, 신혜빈기자
  • 승인 2020.03.30 01: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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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환경이 죄책감 약화시켜

비인간화된 대상에 통제능력 과시

26일,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텔레그램 성착취 피의자 조주빈이 포토라인에 선 25일 오전, 종로경찰서 앞에서 피켓시위가 벌어졌다.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사건의 잔혹함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n번방 운영자들은 고액 아르바이트를 미끼로 피해자들을 유인해 개인정보와 나체 사진을 받아내고, 이것으로 협박해 성착취 영상을 찍어 텔레그램에 유포했다. 그 갈래인 박사방에는 경찰 추산 1만 명의 유료 회원이 있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공간의 특성이 n번방과 같은 집단적인 성착취 범죄가 일어나는데 일조했다고 분석한다. 먼저 디지털 공간에서는 범죄에 가담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범행에 대한 죄책감을 적게 느끼는 책임 분산이 심리적 기제로 작용한다. 박광배(충북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자신이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을 알더라도 디지털과 같은 비대면 환경에서는 책임 분산이 행위를 더욱 쉽게 정당화한다고 설명했다.

  범죄의 잔혹성도 증폭시킨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피해자의 사고 및 정서 능력을 인간보다 낮은 수준의 동물, 물체, 혹은 로봇 같은 객체로 인식하는 비인간화(dehumanization)와 상대적으로 자신을 초인간화(superhumanization)하는 가해자의 심리가 두드러진다. 모니터 화면을 통해 관념적으로 경험하는 가상의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실존하는 인간을 혼동하는 현상이 더 쉽고 강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디지털 성범죄자들은 비인간화된 대상에 초인간적 통제능력을 과시하고 이에 따른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박광배 명예교수는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는 피해자를 노예로 지칭하고 사람이 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도록 만들며 심리적·물질적 이익에 대한 욕구를 충족한다행위의 범죄성을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성범죄 행위에 가담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픈 욕구가 강한 동기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지인을 능욕하는 합성 사진이나 불법 촬영물을 디지털 공간에 올려 공유하는 심리도 비인간화의 결과다. 박광배 명예교수는 지인은 일반적인 타인과 인간적으로 구별되는 존재라며 비인간화가 진행되면 그 구별은 현실적인 의미를 상실하고, 불법 촬영물 속 피해자는 가상 캐릭터에 불과해진다고 설명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신성연이 활동가는 지인 능욕은 그 대상이 되는 여성의 신상에 대한 집착에 불과하지 자연스러운 성욕과는 거리가 멀다고 밝혔다.

섣부른 가해자 악마화는 지양해야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다루는 언론 보도에서는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을 악마화하는 표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MBC26<‘새끼손가락 든 사진인증일베가 괴물 키웠나>라는 보도 제목을 사용하며 조주빈을 괴물로 묘사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무턱대고 범죄자를 사이코패스, 짐승, 악마 등으로 비인간화하는 현상은 문제를 더 양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박광배 명예교수는 디지털 성범죄는 평범하지 않은 특이한 존재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디지털 성범죄는 디지털 환경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자행되기 때문에 유사 사건이 잠재할 가능성이 높다가해자를 비인간화하는 식으로 손쉽게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단호하고 강력한 법적 대응을 통해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억제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신성연이 활동가는 온라인 성착취 네트워크를 없애려면 가해자가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조주빈 역시 악마가 아닌 숱한 성착취 범죄자 중 하나에 불과하기에 개인사보다 처벌수준 논의에 여론이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민호·신혜빈기자 press@

사진두경빈기자 hayab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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