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머리 진짜 많이 자랐다. 나 전역하면 너만큼 기르려고!” 입대한 지 반년을 겨우 넘긴 동기 녀석이 까슬까슬한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 머리 탈색할까 봐, 완전히 백금발로. 신입생 때도 안 해봤는데 괜찮겠지?” 동갑내기 사촌은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해 2주간 격리됐다가 얼마 전 해제했다. 이번에 생활보조금을 받으면 머리카락에 장난을 좀 쳐보고 싶단다. 그 결정을 응원한다며 말을 보탠다. “살면서 한 번쯤은 해봐야 하지 않겠냐.” “이때 아니면 언제 또 해보겠어!”

 나도 그랬다. 1학년 2학기, 팔꿈치에 닿던 긴 머리카락이 지겨워져 단발로 싹둑. 몇 차례의 염색과 탈색으로 녹아버린 머리카락을 투블럭으로 확! 밀어 버렸다. “여자애 머리가 그게 뭐냐는 할머니의 꾸짖음, “네가 남동기 중에 제일 잘생겼다는 과 동기들의 농담. 요즘 같은 세상에 여자 머리가 짧으면 뭐 어때서, 스무 살 예쁜 나이를 믿고 내린 결단에 나는 제법 만족했다.

 그렇게 자른 머리카락이 이제는 제법 자라 어깨에 닿는다. 머리카락이 자라는 동안 생각도 많아졌는지 친구들을 향한 내 응원을 돌이켜 보게 된다. ‘살면서 한 번쯤’, ‘이때 아니면 또 언제라는 말엔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다’, ‘어차피 돌아오게 된다는 생각이 전제돼 있었으려나. 나이와 성별에 따른 평범하고 당연한 헤어스타일이 머릿속에는 박혀 있었다. 까칠한 느낌이 좋았던 내 머리카락도 그래서 또다시 찰랑거리는 단발머리가 됐을 테니.

 아직도 할머니를 떠올리면 짧은 곱슬머리가, 중고등학생을 생각하면 차분한 검은 머리가 첫 번째로 떠오른다. 제 개성에 사는 세상이라는데 평범한 건 뭐고 당연한 건 또 뭘까. 기어코 늘어뜨린 지금 내 단발머리는 스스로 규정한 어울리는 모습을 따라간 결과일지도 모른다. 빗어 흘러내릴 만큼 길어진 머리카락을 따라 오늘도 생각이 이어진다.

 

신혜빈 기자 ve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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