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임영빈이 <조선문단> 10(19257)에 발표한 짧은 희곡이 <복어알>이다. 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서울의 어떤 일본인만 사는 골목과 조선인 가족이 모여 사는 거지 움으로 나누어진다. 이와 같은 장소 분할이 중요한 이유는 이 희곡에 제시된 시간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이때 현대<복어알>이 쓰인 (당시로서는 현재 진행 중이던) 1920년대 식민지 시기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희곡은 시공간의 설정을 눈여겨봐야 하는 장르다. 연행을 염두에 둔, ‘때와 장소의 제약을 가질 수밖에 없기에 그렇다.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 시공간의 배치는 희곡의 의미망을 구조적으로 형성한다.

 <복어알>은 이분법적 구도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그 까닭은 위에 쓴 대로 시공간에 결부된다. 우선 1920년대라는 시간에서는 제국 일본 / 식민지 조선이라는 위계-지배와 피지배의 억압적 관계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이와 같은 대립항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중층적 현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복어알>처럼 짧은 희곡에 착종된 역사의 모순을 묘파하기를 기대하거나 요구하기는 어렵다. 이를 감안한 독자-관객의 관심사는 다만 여기에 있을 따름이다. <복어알>에 담긴 당대의 리얼리티는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형상화되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거지로 근근이 살다, 거지로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거지같은 비루한 현실이 1920년대 당대의 리얼리티다. 이것은 과장 섞인 욕설이 아니다. 실제로 임영빈이 직시하고 있는 세태다. <복어알>에 등장하는 모든 조선인은 정상적인 삶을 박탈당한 거지들이다. 그들은 일본인이 내다버린 쓰레기를 주워 생계를 잇는다. <복어알> 1장이 일본인이 사는 골목 쓰레기통을 뒤지는 조선인 남매의 이야기라는 점은 그래서 핵심적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2장에서 아버지언년용득꾀돌네 아주머니를 죽게 만드는 복어알을 집으로 가져오는 행위가 개연성을 얻는다.

 관건은 이 작품에 나오는 조선인들을 몰살하는 독물-복어알이 일본()이 내다놓은 것, 아니 일본()이 선물인 양 준 것이라는 데 있다. 복어알을 폐기하지 않고 골목에 그냥 둔 일본()의 행태는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알레고리처럼 보인다. 조선인에게 시혜를 베푸는 듯 선전했지만, 식민통치의 실상은 수탈과 죽음이었다. 191931운동 이후 실시된 이른바 문화통치에 기반을 둔 내선일체 정책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조선()에 선물을 주는 모양새로 포장했지만, 그 선물은 독물에 지나지 않았다. 이 작품에서 복어알이 내용물을 알 수 없게 덮여 있었고, 언년과 용득이 복어알을 횡재라고 여긴 것도 이런 점과 연관된다.

 독자-관객은 등장인물을 비극의 운명으로 몰아넣을 요소가 무엇인지 이미 안다. 복어알이라는 희곡의 제목이 그 정체를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자-관객이 느끼는 긴장감이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트뤼포와의 대담에서 히치콕은 서스펜스를 유발하려면 관객이 관련된 사실을 모두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우리는 복어알을 먹으면 예외 없이 죽는다는 것을 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조선인 등장인물들뿐이다. 그들은 복어알을 보통의 물고기알로 생각한다. 그리하여 아무런 의심 없이 복어알을 끓여 먹고 고통스럽게 절명한다. 비참한 역사의 서스펜스다. 그것을 감각한 독자-관객은 오늘날의 삶과 죽음이 이들의 모습과 얼마나 닮았는지 놀라며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허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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