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사천이라 말한다. 자신의 사적인 친분을 내세워 공천하는 행태다. 공천제도 이후 사천논란은 꾸준히 있었는데, 이번 논란에서 유독 눈에 띄었던 점은 인물 중심의 정치판이 더 견고해진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인물정당을 동일시하는 실수를 저지르며, 개인에 대한 비판을 정당에 대한 배신으로 취급한다. 하나의 정당은 수백 명의 당원으로 구성되기에 전부가 통일된 생각을 가질 수 없음은 너무도 자명한데 말이다.

 

 ‘0세력’, ‘00키즈라는 훅은 이제 신물이 난다. 어떤 사람과 친한 것이 대체 무슨 능력을 입증할 수 있다는 말이며, 당원의 부조리를 고발한 것이 어째서 당의 정체성을 부인한 것으로 치부되는가. 문재인 대통령의 선물에 감사를 표하면 민주당 지지자이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판하면 통합당 지지자란 말인가? , 건강한 논의가 또 성큼 물러간다.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

 

 문제는 이런 식의 사천을 당연한 것처럼 취급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티 나지 않았다면 운이 좋았고, 걸렸다면 발뺌을 하면 된다. ‘파렴치관례가 되는 기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런 악습은 몇 사람이 마음을 고쳐먹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몫이다. 많은 청년들은 자신이 가진 권리의 폭을 스스로 좁힌다. ‘선거가 권리인 것처럼 정치 참여도 권리다. ‘결과에 분노하는 것이 권리인 것처럼, ‘빌미를 제공하지 않는것도 권리다.

 

 이 글을 쓰며 내가 가장 서글펐던 점은, ‘바른 정치에 대한 청년들의 기대가 적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의 대표 커뮤니티 고파스가 떠오른다. 그곳엔 정치 게시판이 따로 마련돼 있는데, 자유 게시판에 정치적 게시물을 올리면 정치 게시판으로 가라고 면박을 준다. 정치를 일상이라는 영역으로부터 배제한 우리의 시선이 단편적으로 드러난다. 정치적 논의가 대립을 필연적으로 일으키는 까닭일 테다. 즐거운 분위기에 진지한 낱말로 분위기를 깨는친구인 셈이다.

 

 하지만 좋은 나라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른 것을 어쩌겠는가. 훌륭한 정치를 마음껏 기대하고, 기대하는 만큼 관심을 쏟자. 정치를 향한 권태는, 기득권이 가져야 할 긴장감을 자처해서 덜어주는 태도다. 이 나라를 다스리는 일(政治)에 주인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자. 정치도 청년의 일이다. 기대는 청년의 의무다. ‘틀린정치는 우리의 게으름에서 비롯되고 있다.

 

곽선진 (생명대 식자경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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