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박준​​​​​​​문학과지성사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박준
​​​​​​​문학과지성사

 

 

 

 

 

 

 

 

 

 

 

 

 

 시인 박준은 오늘을 보내면서도 과거를 복기하며 미래를 예감하는 사람이다. ‘사람의 기대 같은 것으로, 뒤늦음으로, 풀 죽은 미움 같은 것으로흘려보낸 날들을 다시 마주하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각자의 조각을 건네어 보일 수 있다고 말하면서. 어떤 이는 후회를, 다른 이는 체념을, 또 다른 이는 망각을 하는 때에 마음이 쓰이는 눈빛의 시는 드물기에 더 소중하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 봄에는 널려 있었다 - ‘그해 봄에

 지나간 모든 찰나는 돌이킬 수 없다. 다만, 그때는 혹은 그해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 이해하는 일은 가능하다. 잠시나마 최선인 선택이었음은 분명했기에 이 시처럼 이제는 그저 널려 있을 뿐이다.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마찬가지다. 박준은 우리 모두가 걷다 보면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길 위에 서 있다고 말하듯, 이 순환적인 용납을 세심히 표현했다.

 

영아가 오면 뜨거운 밥을 / 새로 지어 먹일 것입니다 좋은 세상 영아

 ‘먹는다는 행위는 삶과 가장 가깝다고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나의 사람이 잘살았으면 하는 무렵에 잘 먹고 다녀하고 툭 던지는 인사만 봐도 그렇다. 박준의 시에서도 음식은 시 안의 가 타인을 대하는 다정 어린 마음이다. 자주 요리와 함께 등장하는 화자는 언젠가 우리에게 한 상을 차려 보이고 싶을 수도 있겠다. 먹으면서 서로를 소화하고, 그 온기를 남겨두었다가 몇 달쯤 지나도 이따금 꺼내 먹을 수 있도록.

 

물론 그쯤 가면 / 당신이 있는 곳에도 밤이 오고 // 꼭 밤이 아니더라도 / 허기나 탄식이나 걱정처럼 / 이르게 맞이하는 일들 역시 많을 것입니다 이름으로 가득한 편지 증도에서 보내는 편지

 그리움과 기다림 사이, 몇 번을 다듬어서야 나오는 말로 편지를 꼽을 수 있다. ‘당신 생각을 한다라는 마음을 꾹꾹 눌러 적고서 고이 접어 건네주는 것, 그것이 박준의 사랑 표현이자 그가 사람으로서 사람을 사랑할 때의 태도다. 그는 편지에서 상대방의 미래를 먼저 내다보고서 알려주는 설레발을 치면서도, 경어체를 사용하면서 감정을 조심스럽게 선물하는 특유의 섬세함을 내비친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는 제목을 닮아, 박준은 어느 시점부터 이미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고, 장마도 같이 맞게 되는 어느 시점도 예감하고 있다. ‘우리가 ~할 수도 있겠다는 문장은 우리의 곁에 곧 그가 자리할 거라는 다짐과도 같다. 이 순정이 무척 벅차서, 어느 계절의 내리는 빗줄기를 그보다도 더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채지연(생명대 식자경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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