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고려대학교 정경대학에 입학한 나는 모든 새내기들이 그렇듯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꿈 중의 하나는,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그러나 범생이기질을 벗어나지 못한 채, 하고 싶은 종류의 공부를 마음껏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사회학을 전공하고자 하였으나 (당시 한국에서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철학과 사회학이 엄청난 관심을 끌고 있었다), ‘사회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경제를 알아야 한다는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히 옳은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되는) 지인의 조언에 따라, 경제학을 전공하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대학에 입학하였다.

 

 

 나에게 1학년 때 듣는 교양과목들(국어, 영어, 한국사, 체육 등)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수강과목 중 그나마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경제원론이었다.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내용은 나의 지적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애초에 사회학적관심으로 연구를 평생 직업으로 삼겠다고 마음먹었던 내게는 문과대학에서 제공하는 과목들이 매력적으로 보였고, 나는 경제학 전공이면서도 철학과와 사회학과에서 개설하는 과목들을 문과대학생 못지않게 수강하였다. (당시 정경대학이 문과대학과 함께 서관에 위치했다는 사실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범생이의 겉모습과는 달리 나는 (특히 교수들의 입장에서 볼 때) 전혀 모범적인 학생이 아니었다. 나는 수업에 꼬박꼬박 출석하여 교수들의 강의를 열심히 듣는 학생이 전혀 아니었다. 강의보다는 과목과 관련된 여러 책들, 그리고 과목과는 상관없지만 재미있을 것으로 보이는 책들을 스스로 읽는 것을 선호했다. 아마도 이런 성향 덕분에, 내가 2015년 교무처장직을 맡으면서 학교에서 마련했던 ‘3무 정책을 그렇게 열성적으로 추진했으리라. (첨언하자면, 3무 정책 중 하나인 출석확인 자율화는 출석이 교육에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강의로 이끄는 것은 무엇보다도 교수자가 제공하는 강의의 질이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정책이다)

 살아가다 보면 일생의 경로를 결정짓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대학 2학년 때 거시경제학 강의를 담당하신 교수님께서 당신이 번역한 책이라며 책 한 권을 소개하셨다. 현대의 여러 경제학자들/경제학파들의 이론에 관한 책이었는데, 가장 마지막 장은 앞에서 소개한 거의 대부분의 이론들이 가진 논리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는 이론이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이게 바로 내가 전문 경제학자로 해야 할 것이구나라는 불꽃이 튀었다. 그러나 이 이론은 당시 (현재에도 마찬가지이지만)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이라 가르쳐 줄 사람을 찾기도 자료를 구하기도 힘들었다. 그 이후 나의 과외활동은 (종종 친한 선배들과 며칠 동안 산속에서 술과 함께하던 일탈이외에) 시내 서점의 해외도서 서고 그리고 국내 여러 대학과 외국 대사관의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이 이론에 관한 자료들을 구하고 혼자서 이해하려 노력한 시간이 주를 이루었다. 그 이론은 내가 지금까지 해오는 연구의 중심이 되었다. 대학교수의 으뜸 역할은 기존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보다는 학생들에게 지적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라는 예가 나의 경우가 된 것이다. 나 자신도 지금까지 그런 대학교수이었기를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기를 바랄 뿐이다.

 나에게 대학 시절은 (외골수에 가까운) 뚜렷한 목표 속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맘껏 내 방식대로 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이 내게 매우 소중한 시간으로 남아있는 이유다. 현재의 학생들에게는, 여러 이유로, 내가 했던 방식대로 대학생활을 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대학 시절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자유자율꿈의 추구에 있다는 것을 현재의 학생들도 잊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본다.

박만섭 정경대 교수·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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