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힘으로 '군대'를 바꾼다
시민의 힘으로 '군대'를 바꾼다
  • 조민호 기자
  • 승인 2020.04.04 2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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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남(정치외교학과 09학번)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인터뷰

  성전환 부사관 강제 전역, 기무사 계엄령 문건, 공관병 갑질 논란 등 군과 관련된 굵직한 사건이 언론지상을 장식할 때마다 등장하는 시민단체가 있다. 바로 군인권센터. 2009년 설립 이후 군인권센터는 군대 내 발생한 인권 침해 사건들을 해결해왔다. 지원하는 인권 침해 상담 수는 1년에 1500. 하루 네다섯 건씩 상담이 들어온다.

  김형남(정치외교학과 09학번) 교우가 군인권센터에서 일한 건 올해로 4년째다. 처음엔 센터를 찾은 피해자들을 상담하다 기획정책팀을 거쳐, 올해부터 사무국장을 맡았다. 10여 명의 상근활동가와 함께 군 인권 보호에 앞장서는 그를 지난달 31일 저녁에 학교 앞 카페에서 만났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군 복무 중 겪는 부당한 일을 참지 말라"고 강조했다

 

운동으로 점철된 학부 시절

  2009년 크리스마스이브. 새내기였던 김형남 사무국장이 있었던 곳은 본관 농성장이었다. 청소노동자들이 학교 측의 계약해지에 반발하며 파업과 동시에 본관을 점거했고, 학생들이 농성에 연대했다. 크리스마스에도 본관을 점거해야 하나 걱정하던 차에 계약해지 철회 소식이 전해졌다. 이브날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본관에서 파티 비슷한 걸 했다. “주도적 역할을 한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힘을 모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단 걸 느꼈죠.”

  시민사회 운동가의 잠재력은 학생운동을 하면서 체감했다. 장학금 확충을 위한 31,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규탄하는 시국선언, 입학금 폐지 운동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다. 그가 기획단을 꾸려 처음으로 학생운동의 의제로 만들었던 입학금 폐지는 결국 2018년부터 단계적으로 이뤄지게 됐다.

  학생운동을 오래 하다 보니 김형남 사무국장은 졸업 즈음 입대했다. 취사병으로 평범한 군 생활을 보내던 그가 군과 관련된 일을 하기로 한 건 부조리를 신고한 후임들의 후회 때문이었다.

  ‘부대에서 애물단지 취급받고 너무 힘들다. 조금만 참았으면 별일 없이 지나갔을 텐데 공연히 일을 키운 것 같다.’ 이 말을 듣고 김 사무국장은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부당하거나 목소리 내야 하는 일에 오히려 침묵하고 참는 법을 군대에서 배워서 나오고 있더라고요.” 전역자들이 사회에 나와 군대문화가 재생산되면 사회가 암담해질 거라 생각했다. 마침 군인권센터가 채용을 진행하고 있었다. 전역 후 일주일 만에 취직했다.

 

병사부터 간부까지 고민 나눠

  센터를 찾은 군인에게 군인권센터가 지원하는 상담은 일반적인 상담보다 조사에 가깝다. 사건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확인하고 서류를 검토하는 작업이 주로 이뤄진다. 피상담자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면 가이드라인이나 솔루션을 제시하는 데서 상담이 끝난다. 센터가 직접 개입해 부대에 공문을 보내거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기도 한다. 필요한 경우 언론을 통해 공론화할 때도 있다. “대부분 사건은 언론에 나가지 않고 처리됩니다. 공론화 말고는 방법이 없을 때만 언론에 공개해요.”

  최근 들어 구타나 가혹 행위를 호소하는 상담은 감소 추세다. “윤 일병 사건 이후 직접적인 폭력은 전과가 된다는 걸 알게 된 겁니다. 요즘엔 때리는 대신 왕따를 시켜요. 없는 사람 취급하면서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거죠.” 군내 성폭력 문제도 꾸준히 발생한다. “군대가 위계조직이다 보니 여군들을 대상으로 계급 차를 이용한 성폭력이 여전히 심각합니다.” 군인권센터가 공관병 갑질 사건을 공론화한 이후로는 갑질 문제로도 상담이 많이 들어온다.

  - 군인들이 군인권센터를 찾는 이유는

  “군 내부 기관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있기 때문이겠죠. 군에서 운영하는 국방헬프콜이 1년에 접수하는 상담 건수가 6만 건이에요. 그중 8~90%는 상담사가 단순히 지지·공감을 보내주거나 소속 부대장에게 상담 내용을 통보합니다. 헬프콜을 찾는 건 지휘관에게 보고하는 게 껄끄럽기 때문인데, 통보할 거면 굳이 헬프콜에 전화할 이유가 없잖아요. 군 자체 시스템의 효용이 떨어지고 오히려 사건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군인권센터를 찾는 것 같습니다.”

  한때는 군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센터를 바라보는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부대에 전화하거나 공문을 보내면 감사를 표하는 상관들도 많아졌다. “지휘관이 수천수만 명 되는 부대원 모두를 관리할 순 없습니다. 부대에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분들이 늘어났어요.”

  병사들만 센터를 찾는 게 아니다. 간부 상담이 전체 상담의 절반을 차지한다. 특히 하사, 소위, 중위 같은 초급 간부들이 센터를 자주 찾는다.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인권침해가 아닌지, 또는 상급자가 내린 지시가 부당한 것 같은데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조언을 구해요.”

 

힘들 때 언제든 연락주세요

  시민들의 후원으로만 운영되다 보니 시민단체의 재정은 늘 넉넉지 않다. 군인권센터 역시 후원자 수가 1200명 정도라 상근활동가의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에 불과하다. 돈이 없어서 사람을 많이 뽑지 못하니 활동가 한 명이 두세 명 몫을 해야 한다. “군내 사건·사고가 평일 낮에만 터지란 법은 없잖아요. 야간이나 주말에도 대응하려면 직원 10명으로 충분하진 않죠.”

  그래도 후회는 없다. 고생 끝에 따르는 보람이 크다. 작년부터 부대 내 휴대폰 사용이 가능해진 건 군인권센터의 자랑이다. 설립 당시부터 센터는 군대에서 휴대폰을 쓰게 해주자고 주장했지만, ‘군대를 북한에 갖다 바치려는 빨갱이라는 원색적 비난을 들었다. 병사의 휴대폰 사용을 의제화하고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지난한 설득을 이어가길 10, 일과 후 장병들이 휴대폰을 잡게 됐다. 물론 북한에 나라가 넘어가는 일도 없었다.

  - 시민단체 활동가를 꿈꾸는 지인이 있다면

  “심사숙고하라고 해야죠. 굶어 죽고 싶지 않다면(웃음). 농담이고. 사회를 바꾸겠단 열정만으로는 활동가의 삶을 살아가면서 언젠가 한계에 부딪힙니다. 활동가를 하라고 섣불리 권하기엔 현실이 너무 어려워요. 활동가로서의 비전과 꿈이 있다면 충분히 추천할 수 있지만, 사회를 바꾸는데 이 길만 있는 건 아닙니다.”

  - 앞으로의 목표는

  “언젠가 현실정치에서 인권 운동의 목소리를 내고 싶습니다. 운동의 영역에서 경험하고 배우고 만든 것들을 정치의 영역에서 풀어내 보고 싶어요. 시민단체가 요구하면 정치권은 귀를 닫고 있다가 어디 한 번 들어보겠다는 선심 쓰는 듯한 태도를 보여요. 정치는 제도 밖 사람들을 법의 혜택을 받도록 제도의 영역으로 포섭하는 거잖아요. 과연 현실 정치가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요.”

  - 군 복무 중이거나 입대할 후배들에게 하고픈 말은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참지 마세요. 참으면 몸과 마음이 괴롭고 힘들 뿐이지, 손해 보는 건 나 자신밖에 없습니다.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참지 않아도 됩니다.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 군인권센터(02-7337-119)에 연락해주세요.”

 

조민호 기자 domino@

사진두경빈 기자 hayab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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