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우리네 삶을 통째로 뒤집어 놓았다. 2월 초,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우한폐렴이라는 이름으로 중국 전역을 휩쓸었다. 대한민국에서도 확진자가 열댓 명 정도 발생했으나 정부는 태연한 기색이었다. 천진했던 건지, 미리부터 계획했던 러시아 여행을 무사히 다녀와 특별히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시국은 시국이고, 나는 나대로 행동해도 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별안간 대구에서 확진자 수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났고, 얼마 가지 않아 WHO에서 팬데믹을 선언했다. 등교는 물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도 없게 되었다. 오로지 나 자신과의 시간이 존재할 뿐이다.

  나는 원체 뛰어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텅 빈 집안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겨우 견뎌내던 하루들을 비로소 누릴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을 소개하려고 한다. 친하게 지낸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언니다. 언니는 어디서든 글을 쓴다. 직접 읽어본 적은 없지만 듣기로는 일기 비슷한 잡기장을 들고 다니는 것 같다. 나는 외모는 물론이거니와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에도 좀처럼 정이 가지 않는다. 요즘 말로는 자존감 부족이며,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니 혼자 있는 것이 싫은 사람과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꺼려진다. 나를 기록하는 일에 관심이 없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런데 문득 카페에서 무언가를 끄적이는 언니가 멋있어 보였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언니 또한 본인을 사랑해서 일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언니는 마음의 여유를 찾는 데 있어서 감정을 글로 정리하는 것이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의 말씀처럼, 일기는 거창한 경험 따위를 기록하는 용도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일기장을 사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하루 동안 느낀 감정을 써 내려갔다. 고기를 사다가 양념해 먹는데 빨간 양념 때문에 익었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던 이야기, 우유를 흘린 지도 몰랐는데 옷소매에서 냄새가 나서 알아챈 이야기, 바람이 너무 불어서 창문이 부서질 것만 같았던 이야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놓더라도 지겨워할 사람이 없어서 참 좋았다. 특히 자기 전 막연하게 걱정하는 시간이 확실히 줄었다. 일기에 걱정거리들을 쏟아붓고 나면 후련함만 남았다. 언니는 일기 말고도 클래식 음악, 오래된 일본 밴드를 알려주었고, 이것들 또한 내 삶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었다. 나는 나를 다스리는 법을 알려준 언니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그리고 그 방법을 일찍이 알고 있었던 언니는 나에게 너무 멋진 사람이다.

  온 국민이 지친 시기이다. 밖에 나가지 못하고 특별히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24시간 내내 감정을 느낀다. 그것이 우울함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달래내어야 하는 때이다. 의료진분들께 감사하고 그들을 응원하는 동시에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는 우리 스스로도 칭찬해보는 것은 어떨까.

 

심예원(문과대 영문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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