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미하엘 엔데

 

  망명자들이 모국의 땅을 싸 들고 떠나듯, 나는 몇 권의 책을 챙겨 서울로 왔다. 집을 오래 떠날 때 가져가는 고정된 목록의 책이 있다. 책을 추천해줄 때 가장 먼저 말해주는 것들이다. 소설책이 많지만, 시집이나 사회·과학 도서도 있다. 이 책들만 있으면 어디든지 나의 집이 된다. 아무리 춥고 낯선 곳이라도, 책들을 마음의 모서리에 두고 주춧돌 삼으면 그 위에 새롭게 얻은 경험과 생각들을 견고히 쌓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모모>는 그중 맨 처음 읽은 책이다. 초등학교 3학년의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2시간 동안 이 책을 읽었다. 감동적이었다. 이때는 순수하게 주인공 모모의 감정에 이입했던 것 같다. 모모는 한 마을의 오래된 원형 극장에 살게 된 고아 소녀다. 모모는 금세 마을에서 중요한 존재가 되었는데, 사람들의 말을 진심으로 경청하여 스스로 해결책을 찾게 하는 재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모모를 좋아했다. 더러는 전자기기를 가지고 있는 아이도 있었지만, 모모와 놀 때 그런 것들은 아무 쓸모도 없었다. 원형극장에서는 기계에서 일방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상상을 나누며 하나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런 모습이 그때 우리들이 노는 것과 비슷해서 더욱 공감할 수 있었다.

  8년 뒤, 고등학교 2학년의 나는 기숙사에서 또다시 모모를 읽었다. 이번에는 모모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게 더욱 마음이 기울었다. 내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모모네 마을에 회색 신사들이 나타났다. 그 후로 마을 사람들은 시간을 낭비하면 안된다며 홀린 듯이 바쁘게 살기 시작했다. 온 마을에 시간은 금이다와 같은 표어가 붙었다. 회색 신사는 모모에게도 찾아갔지만, 설득은 실패했고, 오히려 그의 말을 열심히 경청한 모모에게 속셈이 탄로 났다. 회색 신사들의 정체는 사람들이 아낀 죽은시간을 훔치는 시간 도둑들이었던 것이다.

  나는 시간이 항상 부족했다. 시간은 나보다 앞서 저 멀리 가 있고, 나는 돌아가는 시곗바늘을 따라 허겁지겁 달려가는 것 같았다. 한밤중까지 공부를 해도 시간이 모자란 것은 시간 관리를 못 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읽은 모모는 그게 문제가 아님을 알려주었다. 내가 시간에 질질 끌려다니고 있던 것은 내가 그 시간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시간의 주인은 곧 삶의 주인과 같다. 어떤 시간 동안의 삶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면 나는 의지와 상관없는 일을 하며 시간을 죽이게 된다. 책은 이렇게 말한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시간들 사이로 길을 잃은 것 같다면, 생각해보자. 삶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있는가?

 

김규리(문과대 노문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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