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하게도 현재 피해지원국의 업무가 과중한 상태라 다른 외부일정을 잡기 어렵습니다. 함께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입니다. 단체가 조금 더 정비가 된 다음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 요청 메일에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가 보낸 답변이다. 인터뷰 거절 메일이야 숱하게 받아 봤지만, 이번만큼은 씁쓸한 기분을 숨길 수가 없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민간단체다. 지원요청이 들어오면 웹상에 떠도는 누군가의 불법 촬영물을 찾아 헤맨다. 유포된 플랫폼을 확인하고, 플랫폼에 다시 삭제요청을 하는 게 그들의 활동이다.

  하는 일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기 때문에, ‘업무가 과중한 상태라는 말이 가볍게 다가오지 않는다. 재작년에는 웹하드였고 작년에는 카톡방이었고 이번에는 텔레그램인가 어림짐작할 뿐이다.

  하루에 마주치는 불법 촬영물의 양은 얼마나 되는지, 정부와 민간단체가 손잡고 나서도 불법 촬영물 삭제 지원 인력이 부족한 사정은 무엇인지, 작년에서야 겨우 임금이 최저시급을 맞추고 있다는 소식이 진짜인지, 온종일 불법 촬영물을 붙들고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본인들의 트라우마는 누가 책임져 주는지. 준비한 질문은 산더미지만 업무가 과중한 상태라는 글귀에 조용히 입을 다문다.

  불법촬영물 삭제 지원을 하는 또 다른 단체인 DSO(디지털 성폭력 아웃)4달 전 활동중단 공지를 홈페이지에 내걸었다. ‘업무가 과중해 더는 단체를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들은 활동중단공지 말미에 후원자 여러분과 지지자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비록 큰 도움을 드리지 못했으나 현재까지도 저희 단체의 연대와 지원을 받고 계신 생존자분들께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썼다.

  인터뷰 거절 메일에는 괜찮다는 의미로 답장을 다시 보내야 한다. 내용을 쭉 쓰다가 맺음말이 어려웠다. 항상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적어왔는데, 이번에는 깜빡이는 커서만 오래 바라봤다. ‘업무가 과중하고 죄송하다는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 감사하다는 공허한 말만 남겼다.

정용재 기자 ildo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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