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에서 맞는 세 번째 봄이다. 3년 전 회사 발령으로 서울에서 구리로 다니다가, 재작년 가을에 부모님에게서 물리적으로 떨어져 나오게 됐다. ·퇴근 길이 번거롭다거나, 거리가 멀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부모님으로부터의 경제적·심리적 분리와 독립을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선택한 일이었다.

  삼 남매 중 맏이여서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내게 많이 의지하고 기대가 크셨다. 부모님의 고민이나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동으로 안테나가 작동하곤 했다. 그러다 30대에 들어서면서 스스로의 에너지가 한정돼있다는 것, 그리고 부모님과 분리가 지연되어 정작 나의 삶의 과제들이 지연되고 있는 것을 점차 느끼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그것을 챙기는 것, 내 마음이 어떠한지 감정을 느끼고 인지하고 다루는 것이 나이에 비해 많이 서툴렀다. 내가 부모님을 걱정하고 챙긴다고 해도, 대신하여 부모님의 삶을 변화시켜드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기대와 장녀에 대하여 의지하는 마음이 어느새 버겁고 벅차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내 삶을 지체할 수가 없어서 독립을 선언하였다.

  독립 2년 차가 된 지금 부모님과 함께 살 때보다 경제 관념이 늘어나고, 1인분의 청소, 빨래, 설거지 등 살림살이를 제법 능숙하게 해내는 모습이 뿌듯하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좀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다. 나를 위해 요리를 하고,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의 필요를 돌봐주는 과정에서 능숙하지 않아도, 노력하는 것 자체에 만족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나의 미숙하고 서툰 부분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타인의 그것에 대해서도 예전보다는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에는 나만의 아지트에 친구를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한다. 앞으로도 타인과 교감하는 즐거움의 순간들을 늘려가고 싶다. 캘빈 콜라루쏘의 <정신분석적 발달이론>에 따르면 청년기(20~40)에 자기를 더 잘 인식하고, 부모로부터 자신을 분리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에릭슨의 <유년기와 사회>에서는 청년기에 정체감을 위해 애쓴 후 친밀감을 추구하는 것이 발달과업이라고 설명한다.

  ‘부모님 집에서 살면 돈도 아끼고 편한데 굳이 독립을 했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거기에 대해 쉽게 답하지 못했던 이유는, 이런 긴한 사연과 필요를 일일이 설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여튼 나는 인간의 생애주기에서 정체감, 친밀감 발달과업을 위해 애쓰던 중이었나 보다.

<청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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