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정치인은 언제나 검은색이다. 새까만 정장을 입고 검은돈을 주고받으며,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최종 흑막으로 등장한다. 작년 영국에서 세계 23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정치인이 가장 믿을 수 없는 직업 1위를 차지했다고 하니, 현실의 정치인에 대한 인식도 영화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정치인들 역시도 아무튼 속 시꺼먼 이들이라는 세간의 인식을 알고 있는지, 선거철이 되면 으레 현란한 색의 현수막들이 거리를 뒤덮는다. 경쾌한 노래와 율동, 90도로 건네는 인사는 덤이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정치인이 되겠습니다!”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위해 이 한 몸 바치겠습니다!” 마트에 쓰여 있는 신선한 과일, 오늘 하루 초특가만큼이나 식상한 선거철의 문구들이 반만 실현되었더라도, ‘좋은 정치인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쓰는 이 글이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생애 첫 투표용지를 받았을 때는 설레는 마음으로 혼란한 현실을 타개해 줄 정치인을 꿈꾼 적이 있다. 성실하고 청렴하고 유능하고 겸손한, 그런 미사여구를 모두 붙여도 아깝지 않은 영웅 같은 정치인을. 하지만 몇 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들고 있는 현수막이 빨강이든 파랑이든 선거철이 지나면 탄생하는 것은 또 한 명의 검은 정치인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좋은 정치인이란 무엇인가? 어쩌면 영웅같은 정치인은 유토피아처럼 하나의 지향점일 뿐,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좋은 정치인이 드물다는 사실이, 좋은 정치는 어차피 불가능하니 돌아오는 15일엔 공짜 휴일이나 즐기자는 뜻은 아니다.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항상 성군을 바라왔지만, 한 명의 성군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의회와 민주주의를 만들었다. 그러니 청렴한 정치인을 기대하기보다 김영란법을, 헌신적인 국회의원을 바라기보다 의정활동 보고서 공개제도를 만드는 게 낫다. 또 누가 아는가, 법과 제도로 최소한 나쁜 정치인들을 걸러내다 보면, 어느 날 국민의 마음을 아는 꿈같은 정치인이 생겨날지.

  또다시 선거 날이 돌아온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지 않아도 좋다, 받은 월급만큼 힘써 일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잘사는 나라라는 거창한 목표가 없어도 좋다, 최소한 가장 힘든 이들을 구해주는 사람이라면. 꿈같은 정치인은 없더라도 이런 정치인은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들 한다. 이 꽃이 진 뒤에는, 좋은 정치인은 없더라도 더 나은 정치라는 열매가 맺히면 좋겠다.

윤휘(정경대 행정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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