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아내가 죽은 척을 하고 있다>는 솔직히 그렇고 그런 영화다. 제목만으로는 아주 발칙하고 경쾌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퇴근해보면 아내가 죽어 있다. 그것도 대개는 자살한 모습으로. 근데 꼭 자살의 형상만은 아니다. 머리에 인디언 화살이 관통돼 죽어 있기도 하고, 강도가 들어 왔었는지 목이 베어 피가 흥건하게 흘러 있는 시체로 발견되기도 한다. 이런 얘기 하면 그렇지만, 가장 귀여웠던 것은 커다란 악어 입에 머리를 물린 채 죽어 있는 모습이었다. 남편도 이 대목쯤 되면 그리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웃는 얼굴이 된다.

  준(야스다 켄)과 치에(에이쿠라 나나)3년 차 부부다. 아직은 신혼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생활은 약간 루즈하게 처져 있는 모양인데 그건 순전히 준 탓이다. 그는 아내인 치에에 비해 나이가 좀 많다. 그리고 그에겐 이번이 재혼이다. 치에는 물론 초혼이고. 결혼이 두 번째인 남자는 사랑에 한 번 실패한 만큼 거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보다는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치에는 다르다. 그녀는 일상이 항상 뭔가 자극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밥도 맛있다. 한바탕 소동극을 벌인 후에 곧바로 맛있는 진수성찬을 차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치에에게는 삶과 죽음, 그리고 밥과 놀이가 항상 연결돼 있어야 한다.

  준은 치에의 이런 치기(稚氣)를 젊은 아내의 지나가는 장난쯤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게 꼭 그럴 일이 아니다. 그는 매일같이 죽어 있는 아내를 발견하면서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남자는 이럴 때 대개 엄숙한 표정으로 돌아가곤 한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하기 십상이다. 무슨 문제 있어? 나한테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하는 게 어때? 정 심심하면 아르바이트라도 좀 해보든가? 그런데 여자가 바라는 것은 사실 그 따위것이 아니다. 때론 죽은 척하는 데 있어서 아이디어도 같이 짜고, 아니면 한 번쯤은 그 장난에 동참하거나, 더 나아가 사실은 처음 사랑을 고백할 때 했던 말, 장소, 그때의 분위기 등등에 대해 살면서 아니 1년에 한 번쯤은, 그것도 아니라면 반의반쯤은 기억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여자는 그걸 위해 일상에 무수한 퍼즐과 지뢰를 만들어 놓고 남자가 수수께끼를 하나하나 풀어 가며 발밑에 폭탄을 피해 자신의 가슴에 짜자잔 안기는 꿈을 꾼다. 영화 속 어린 신부가 늙은 아저씨뻘 남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바로 그런 놀이 아닌 놀이로 자신들의 위대한 사랑을 늘 기억해 주는 것이다.

  근데 준은 치에의 그 마음을 깨닫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린다. 오히려 한번 결혼에 실패했던 만큼 이번에도 3년의 시간을 넘기지 못할까만을 두려워한다. 남녀는, 비록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해도, 일상에서는 늘 이렇게 서로의 심리적 착지점이 다른 법이다. 때문에 결혼했다 과신하지 말고 언제나 둘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고 노력해야 한다. 남자 쪽에서든, 여자 쪽에서든. 영화에서도 치에의 장난은 점점 더 진지한 노력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이 부부가 결국 무너지지 않고 잘 살아 낼 수 있을까. 그 결과를 지켜보게 되는 것이 이 영화를 보는 맛이다.

  아베 시대 이후 일본영화의 주제가 유독 가정과 가족, 부부, 남녀의 사랑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감을 준다. 일본 사회가 일응 보수화돼 있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시대의 분위기가 그 이상의 이야기를 펼치기에는 센서십(censorship)의 검날이 무의식적으로나마 영화계 내부에 깊숙이 파고 들어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보다 정치 사회적 이슈를 다룬 얘기를 영화로 만들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일본 사회는 영화 한 편으로 들썩일 역동성을 잃은 지 오래다.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아내가 죽은 척을 하고 있다>는 귀엽고 흥미로운 설정의 작품이지만 마치 TV의 소프 오페라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을 준다. 어쨌든 전혀 그럴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다 보고 나면 일본 사회의 현실, 그 실상이 느껴진다. 일본사람들이 지금 저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식으로. 이 영화를 두고 역설적으로 정치 사회적인 영화라고 하는 건 그 때문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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