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 지하철역까지 가는 마을버스를 탔다. 카드를 찍으며 버스에 오르자,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께서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뭐라뭐라 하셨다. 대충 듣기로는, 내 바지를 꿰매버려야 한다는 식의 말이었다. 무릎 부근이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있었던 게 맘에 안 들었나 보다. 그 뒤로도 내가 내릴 때까지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을 쏟아냈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 할아버지의 성화를 함께 지켜본 여성분이 뒤따라 내리면서 저런 꼰대는 그냥 무시해 버려요라며 위로를 건넸다.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요즘 젊은 세대와는 다르게 꽉 막힌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꼰대 취급을 받는다. 은어로 사용돼 정확한 정의는 모르겠지만, 대충 그런 느낌이다. ‘꼰대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지며, 나이가 어떻든 간에 자신에게 싫은 소리하는 사람은 다 꼰대 취급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길 가다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는 학생들이 많아서 걱정돼요.” 지난 학기 전공 수업 중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스마트폰을 보며 걷다 사고 난 학생을 목격한 경험이 있어 걱정이 더욱 컸을 테다. 그래도 속으로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던 찰나, “저 꼰대 또 시작이네라며 수군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교수님이 꼰대라는 생각까진 안 해봤는데, 아차 싶었다.

  나에게 큰 소리로 화내던 버스 할아버지야 무시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나를 생각해주는 주변 사람들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사실 잘 들어보면 틀린 소리는 거의 없고, 나를 위해 하는 말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어른이 하는 말은 다 잔소리처럼 들린다. 그거까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많은 이들이 꼰대라는 단어 하나로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의 말마저 무시할 권리가 생긴 듯 군다. 언제가 될 진 모르지만, 진심 어린 걱정의 말을 하는 내 모습이 그저 꼰대처럼만 보인다면. 상상만 해도 씁쓸하다. 싫은 소리 하는 누군가를 단번에 꼰대로 규정하기 전에, 그 마음을 한 번쯤은 떠올려 봐야겠다. 그래도 가끔은, 우리가 꼰대라 무시했던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봐야겠다.

김민주 기자 itz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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